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면 화면에 글자가 바로 나타난다. 익숙한 동작이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손가락으로 여러 개의 키를 눌러 문장을 만든다는 방식은 컴퓨터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었던 도구가 타자기다.
타자기는 사람이 펜을 움직여 글자의 모양을 직접 만드는 대신, 원하는 글자가 연결된 키를 누르면 기계장치가 종이에 글자를 찍어주는 도구였다. 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써도 비교적 일정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손글씨와는 다른 기록 방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타자기는 누가 어느 날 완성품을 발명해 곧바로 널리 사용한 물건이 아니었다. 여러 발명가의 시도와 실패, 기계 구조의 개선을 거치면서 실용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키보드 배열의 흔적은 오늘날 컴퓨터와 스마트폰에도 남아 있다.
타자기를 만들려는 시도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고 기계를 이용해 문자를 기록하려는 아이디어는 적어도 18세기부터 여러 형태로 등장했다.
1714년 영국의 헨리 밀(Henry Mill)은 글자를 인쇄하거나 찍는 기계와 관련된 특허를 받았다. 다만 당시 장치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실제 사용 여부에 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타자기의 직접적인 완성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19세기가 되면서 여러 나라의 발명가들이 보다 다양한 문자 입력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펠레그리노 투리(Pellegrino Turri)가 시각장애가 있던 카롤리나 판토니 다 피비차노를 위해 글을 쓰는 기계를 제작한 사례도 알려져 있다. 이 장치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기계로 작성된 편지 일부가 전해지면서 초기 타자 장치의 역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이처럼 타자기의 역사는 한 사람의 단일한 발명으로 시작됐다고 보기 어렵다.
핵심적인 문제는 단순히 글자를 찍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람이 빠르게 키를 누를 수 있어야 하고, 글자 위치가 일정해야 하며, 종이를 다음 위치로 이동시키는 장치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실제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만큼 안정적이어야 했다.
아이디어를 실제 생활도구로 바꾸는 과정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숄스의 타자기는 어떻게 상용 제품이 되었을까?
현대 타자기의 발전에서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은 미국의 크리스토퍼 레이섬 숄스(Christopher Latham Sholes)다.
숄스는 카를로스 글리든(Carlos Glidden), 새뮤얼 솔레(Samuel Soulé) 등과 함께 1860년대 후반 타자 장치를 개발했다.
초기의 기계는 완벽하지 않았다. 글자를 찍는 구조와 키의 배열을 비롯해 여러 부분을 계속 수정해야 했다.
이후 숄스와 글리든의 타자기와 관련된 권리는 총기와 재봉틀 등을 생산하던 E. Remington and Sons와 연결되었고, 1870년대에는 상업적으로 생산되는 타자기가 등장했다.
1874년 판매되기 시작한 Sholes and Glidden Type-Writer는 타자기 역사에서 중요한 초기 상용 제품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 제품이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무실에서 타자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기계를 구입하려면 비용이 들었고, 사용자는 키보드 입력 방법을 익혀야 했다. 기계 자체도 계속 개선될 필요가 있었다.
후속 제품에서는 대문자와 소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는 등 실용성이 높아졌다. 여러 제조업체가 경쟁하면서 타자기는 점차 사무용 기록도구로 자리를 넓혀갔다.
따라서 숄스를 단순히 ‘타자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실용적인 타자기의 발전과 상용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QWERTY 키보드는 왜 이런 순서로 배열되었을까?
컴퓨터 키보드의 왼쪽 위를 보면 알파벳이 Q-W-E-R-T-Y 순서로 놓여 있다.
그래서 이 배열을 흔히 QWERTY 배열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배열이 컴퓨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숄스가 개발하던 타자기의 키 배열이 여러 차례 수정되는 과정에서 QWERTY와 연결되는 형태가 나타났고, 이후 상용 타자기에 채택되면서 널리 퍼졌다.
여기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초기 타자기에서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입력하면 내부의 활자 막대가 서로 부딪히거나 엉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입력 속도를 늦추려고 QWERTY 배열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초기 타자기의 기계적인 충돌 문제와 문자 조합을 고려해 배열을 조정했다는 설명은 타당성이 있지만, QWERTY가 타이핑 속도를 일부러 느리게 만들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단정할 충분한 근거는 없다.
전신 업무에서 사용하는 문자 조합과 입력 편의 등 여러 요인이 배열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도 있다.
중요한 것은 QWERTY가 한 번에 완성된 배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기 타자기의 키 배열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고, 상용 제품과 사용자층이 늘어나면서 특정 배열이 표준처럼 굳어졌다.
한번 많은 사람이 익힌 입력 방식을 바꾸려면 새로운 기계뿐 아니라 사람들의 습관과 교육 방식까지 바꿔야 한다.
이 때문에 기계식 타자기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QWERTY는 컴퓨터 키보드와 스마트폰의 가상 키보드에까지 이어졌다.
타자기는 사무실의 기록 방식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손으로 작성한 문서는 글쓴이마다 글씨 모양이 다르다.
누군가의 필체는 읽기 쉬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면 타자기로 작성하면 같은 기계에서 동일한 키를 눌렀을 때 일정한 모양의 글자가 찍힌다.
이 특징은 업무용 문서를 만드는 데 특히 유용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타자기가 기업과 관공서 등으로 확산되면서 편지와 보고서, 계약 관련 문서와 각종 기록을 기계로 작성하는 일이 늘어났다.
타자기의 확산은 새로운 직업과 사무 노동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타이핑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 필요해졌고, 타자 교육이 이루어졌다.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무직에 진출하는 여성의 수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타이피스트와 비서 업무가 중요한 직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를 단순히 ‘타자기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만들었다’고 설명하면 당시의 복잡한 사회 변화를 지나치게 축소하게 된다.
산업화와 기업 조직의 확대, 사무 업무 증가, 교육 기회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타자기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무 업무를 만들어낸 중요한 도구 중 하나였다.
기록도구 하나가 바뀌면서 문서를 만드는 속도뿐 아니라 누가 기록 업무를 담당하고 어떤 기술을 배워야 하는가까지 달라진 셈이다.
전동 타자기에서 컴퓨터 키보드로 이어지다
초기의 타자기는 대부분 사람이 키를 누르는 힘을 기계장치로 전달해 활자가 종이를 때리는 방식이었다.
20세기에 들어 전기를 이용하는 타자기가 발전하면서 입력 방식도 달라졌다.
전동 타자기는 키를 강하게 누르지 않아도 비교적 일정한 힘으로 글자를 찍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기존의 여러 활자 막대를 사용하는 구조와 다른 방식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1961년 출시된 IBM Selectric이다.
이 타자기는 여러 개의 활자 막대 대신 글자들이 새겨진 공 모양의 부품, 이른바 타입볼(typeball)을 사용했다. 입력한 글자에 맞춰 타입볼이 회전하고 기울어진 뒤 종이를 향해 움직이는 구조였다.
타입볼을 교체하면 글꼴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워드프로세서와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기록 방식은 다시 크게 변했다.
타자기에서는 잘못 입력한 글자를 수정하려면 수정액이나 수정 테이프 등을 사용해야 했다. 컴퓨터에서는 화면에서 문장을 확인한 뒤 삭제하고 다시 입력할 수 있었으며, 문단 전체를 옮기거나 복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입력과 최종 기록이 분리되었다는 점이다.
기계식 타자기는 키를 누르는 순간 종이에 글자가 찍힌다. 컴퓨터에서는 키를 눌러 입력한 글자가 우선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고, 필요할 때 화면으로 보거나 프린터로 출력한다.
타자기의 핵심이었던 키보드는 남았지만 그 뒤에서 움직이는 기록 기술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마무리
타자기는 손으로 글자의 모양을 직접 그리지 않고 키를 눌러 정해진 글자를 기록하는 방식을 일상으로 가져온 중요한 도구였다.
18세기부터 기계로 문자를 기록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고, 19세기에는 숄스와 동료들의 개발을 거쳐 상업적으로 생산되는 타자기가 등장했다. 이후 기계의 성능이 개선되고 사무 업무가 확대되면서 타자기는 중요한 기록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타자기가 남긴 흔적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키보드다.
지금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QWERTY 배열의 뿌리는 19세기 타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자기 본체와 잉크 리본, 활자 막대는 대부분의 일상에서 사라졌지만 손가락으로 키를 눌러 문장을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앞선 기록도구들이 어떤 재료로 글씨를 쓸 것인가를 발전시켰다면 타자기는 질문 자체를 조금 바꿨다.
‘글자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글자를 선택해 기계에 찍게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지금 키보드로 문장 하나를 입력해보면 타자기의 흔적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화면에는 디지털 글자가 나타나지만 손가락 아래의 Q, W, E, R, T, Y는 19세기 기계식 기록도구의 역사를 아직 품고 있다.
FAQ
Q. 타자기는 크리스토퍼 숄스가 처음 발명했나요?
숄스는 실용적인 타자기의 발전과 상용화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타자기를 역사상 처음 생각하거나 만든 유일한 발명가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 앞서 기계로 문자를 기록하려는 여러 발명과 특허가 있었습니다. 숄스와 동료들이 개발한 장치는 이후 레밍턴을 통해 상업적으로 생산되면서 타자기 보급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Q. QWERTY 배열은 사람들이 일부러 천천히 타자를 치게 만들려고 만들어졌나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초기 타자기의 기계적인 충돌 문제와 문자 조합 등을 고려해 키 배열이 변화한 것은 맞지만, QWERTY의 목적이 단순히 타이핑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는 설명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가 없습니다. 여러 실용적인 요인과 초기 사용 환경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Q. 타자기에도 컴퓨터처럼 글꼴을 바꾸는 기능이 있었나요?
일반적인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글꼴 변경이 쉽지 않았지만 일부 제품에서는 가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IBM Selectric은 글자가 새겨진 타입볼을 교체해 다른 서체나 문자 구성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컴퓨터처럼 화면에서 몇 번의 조작만으로 자유롭게 글꼴을 변경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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