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의 깃털로 글씨를 썼을까? 깃펜의 역사와 사라진 이유

 



영화나 그림에서 오래된 서재가 등장하면 책상 위에 깃털이 달린 펜과 잉크병이 놓여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새의 깃털을 글쓰기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꽤 독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깃펜은 단순히 보기 좋은 장식품이 아니었다. 종이와 양피지에 글을 남기던 시대에 실제로 오랫동안 사용된 중요한 필기구였다. 인쇄 기술이 발전한 뒤에도 사람들은 편지와 문서, 원고를 직접 작성하기 위해 계속 펜을 사용해야 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재료 가운데 왜 하필 새의 깃털이 선택되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면 깃펜이 당시의 기록 환경에 꽤 잘 맞는 도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깃펜보다 먼저 사용된 갈대펜

깃펜의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갈대펜을 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식물의 줄기를 다듬어 만든 갈대펜이 기록에 사용되었다. 끝부분을 비스듬하게 자르고 필요한 형태로 다듬은 뒤 잉크를 묻혀 글을 쓰는 방식이었다.

구조만 보면 상당히 단순하다. 하지만 끝을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종이에 닿는 부분의 모양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글씨의 굵기와 느낌도 달라질 수 있었다.

갈대펜은 파피루스와 같은 기록 재료와 함께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이후 유럽에서 양피지의 사용이 널리 퍼지고 필사 문화가 발전하면서 깃펜이 중요한 필기구로 자리 잡았다.

깃펜이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정확한 시작 시점을 하나의 연도로 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세 초기에는 이미 깃펜이 필사 작업에 사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대표적인 필기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잉크병 옆의 깃털 펜’은 바로 이 긴 사용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왜 새의 깃털이 펜으로 적합했을까?

새의 깃털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단단한 축이 있다. 특히 큰 날개깃은 축이 비교적 길고 단단하면서도 적당한 탄성을 가진다.

깃펜을 만들 때는 이 축의 끝부분을 잘라 펜촉처럼 다듬었다. 끝을 뾰족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씨를 쓰기 좋은 각도와 폭으로 손질해야 했다.

펜촉 끝에는 잉크의 흐름을 돕기 위한 작은 틈을 만들기도 했다. 펜 끝을 잉크에 담그면 소량의 잉크가 머물렀다가 글씨를 쓰면서 기록면으로 이동한다.

즉 깃털은 손잡이와 펜촉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천연 재료였던 셈이다.

모든 깃털이 똑같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크고 단단한 날개깃이 선호되었고, 거위 깃털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조나 칠면조를 비롯한 다른 새의 깃털도 용도와 지역에 따라 사용될 수 있었다.

여기서 깃펜의 특징 하나가 드러난다. 공장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생산되는 현대 볼펜과 달리, 깃펜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자가 직접 다듬어 사용하는 도구에 가까웠다.

같은 깃털이라도 끝을 어떻게 손질하느냐에 따라 필기감이 달라질 수 있었다.

깃펜은 한 번 깎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었을까?

현대의 펜은 뚜껑을 열거나 심을 넣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깃펜은 조금 달랐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종이나 양피지에 닿는 끝부분이 닳거나 형태가 변할 수 있었다. 그러면 다시 끝을 다듬어야 했다.

이때 필요한 도구가 작은 칼이었다.

영어에서 작은 주머니칼을 가리키는 penknife라는 단어 역시 원래 펜을 다듬는 데 사용하던 칼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펜은 오늘날의 볼펜이 아니라 깃펜이었다.

필경사나 글을 자주 쓰는 사람에게는 글씨를 쓰는 능력뿐 아니라 펜촉을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도 중요했다. 펜 끝이 지나치게 무뎌지거나 갈라지면 잉크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깃펜에는 잉크를 계속 보충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펜 끝에 머금을 수 있는 잉크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몇 글자나 몇 단어를 쓰고 다시 잉크병에 펜을 담그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사용하는 펜촉과 글씨 크기 등에 따라 한 번 찍어서 쓸 수 있는 양도 달라졌다.

오늘날 볼펜으로 한 페이지를 쉬지 않고 쓰는 것과 비교하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동작 자체가 일반적인 글쓰기 과정의 일부였다.

금속 펜촉은 깃펜을 어떻게 밀어냈을까?

금속으로 된 펜촉 자체는 오래전부터 여러 형태로 시도되었지만, 깃펜을 빠르게 대체할 정도로 값싸고 균일한 금속 펜촉을 대량생산하는 것은 산업 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있었다.

특히 19세기 영국 버밍엄은 강철 펜촉 생산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기계를 이용해 금속판을 잘라 일정한 형태의 펜촉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필기구의 상황도 달라졌다. 천연 깃털을 하나씩 골라 다듬는 대신 비교적 균일한 품질의 펜촉을 많은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속 펜촉은 나무 등의 손잡이에 끼우고 잉크병에 찍어 사용하는 딥펜(dip pen) 형태로 널리 활용되었다.

여전히 잉크를 찍어 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깃펜과 비슷했지만, 펜촉의 재료가 깃털에서 금속으로 바뀌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금속 펜촉 역시 종류에 따라 닳거나 부식될 수 있었지만, 일정한 규격으로 생산하고 교체하기 쉬웠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이후 펜 몸체 안에 잉크를 저장하고 펜촉으로 공급하는 만년필이 실용적으로 발전하면서 필기구는 다시 한번 달라졌다.

이제 글을 쓸 때마다 책상 위 잉크병에 펜촉을 반복해서 담글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깃펜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일상적인 필기 도구로서 깃펜을 사용하는 사람은 오늘날 많지 않다. 볼펜과 만년필, 샤프펜슬처럼 휴대와 관리가 편한 필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깃펜의 흔적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캘리그래피나 역사적인 필기법을 재현하는 분야에서는 깃펜이 사용되기도 한다. 박물관의 전시나 시대를 재현한 행사에서도 당시의 기록 문화를 보여주는 도구로 등장한다.

디지털 환경에서도 깃펜은 ‘글쓰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사용된다. 실제로 깃털을 깎아 글을 쓰는 사람은 크게 줄었지만, 깃펜의 형태 자체는 오랜 기록 문화의 상징처럼 남은 셈이다.

책상 위의 도구를 비교해보면 변화가 더욱 선명하다.

깃펜은 사용자가 직접 끝을 손질하고 잉크를 반복해서 묻혀야 했다. 현대의 볼펜은 잉크와 펜촉이 하나의 몸체 안에 들어가 있으며, 다 쓰면 심을 교체하거나 새 펜을 사용할 수 있다.

결국 필기구의 발전은 단순히 ‘더 잘 써지는 펜’을 만드는 과정만은 아니었다. 잉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얼마나 적은 준비로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는가를 개선해 온 과정이기도 했다.

마무리

깃펜은 새의 깃털을 우연히 글쓰기 도구로 사용한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큰 날개깃의 단단한 축을 적절하게 다듬으면 잉크를 이용해 글씨를 쓸 수 있었고, 필요할 때 다시 펜촉을 손질하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깃펜은 유럽의 필사와 문서 작성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균일한 금속 펜촉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깃펜의 자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후 만년필처럼 잉크를 몸체 안에 저장하는 필기구가 발전하면서 글쓰기의 편리함은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앞서 살펴본 종이가 기록을 받아주는 면이고 잉크가 흔적을 만드는 재료라면, 깃펜은 두 가지를 실제 글자로 연결해주던 도구였다.

다음에 오래된 문서나 필사본을 볼 기회가 있다면 내용뿐 아니라 글씨의 선도 한번 살펴볼 만하다. 그 선을 남긴 작은 펜촉 뒤에는 깃털을 고르고 깎아 사용했던 당시 사람들의 기록 방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FAQ

Q. 깃펜에는 주로 어떤 새의 깃털을 사용했나요?

거위의 큰 날개깃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단하면서도 적당한 탄성이 있어 펜촉으로 다듬기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역과 용도에 따라 백조나 칠면조 등 다른 새의 깃털도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Q. 깃펜은 깃털을 뽑아서 바로 잉크에 찍어 사용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깃털 축의 끝부분을 자르고 펜촉 형태로 세밀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사용하면서 끝이 닳으면 다시 손질하기도 했습니다.

Q. 깃펜은 왜 금속 펜에 자리를 내주었나요?

19세기 산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강철 펜촉을 비교적 저렴하고 균일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이후 잉크를 몸체 안에 저장하는 만년필까지 발전하면서 깃펜보다 관리와 휴대가 편리한 필기구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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