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할 일이 생기면 종이 한 장을 꺼내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종이가 없다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종이도 컴퓨터도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했을까?
사람에게 기록은 오래전부터 필요했다. 물건의 수량을 남겨야 했고 세금이나 거래 내용을 기억해야 했다. 왕의 명령이나 종교적인 내용, 먼 곳에 전달할 정보도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무엇에 쓸 것인가였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식물, 나무와 돌 등을 기록 매체로 활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기록 재료가 단순히 글을 담는 바탕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글을 쓰는 방법부터 문서를 보관하고 운반하는 방식까지 달라졌다.
종이가 등장하기 전 기록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종이를 편리하게 느끼는 이유도 훨씬 분명해진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젖은 점토가 기록장이 됐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점토판(clay tablet)이 중요한 기록 매체로 사용됐다.
이 지역에서는 강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점토를 기록에 활용할 수 있었다.
방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부드러운 점토를 판 모양으로 만든 다음 완전히 굳기 전에 갈대 등으로 만든 도구를 눌러 표시를 남겼다.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문자로 알려진 쐐기문자라는 이름도 이렇게 눌러 만든 자국의 모양과 관련이 있다.
점토판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내용이 기록됐다.
곡물이나 가축 같은 물품의 수량부터 거래와 계약, 행정 기록, 편지, 학교에서 사용한 연습문과 문학 작품까지 남아 있다.
따라서 점토판을 단순히 고대의 ‘책’이라고만 생각하기보다는 장부와 계약서, 편지, 학습장 등 여러 종류의 문서 역할을 했던 기록 매체라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점토에는 독특한 장점도 있었다.
주변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다면 반복해서 기록판을 만들 수 있었고, 말리거나 구우면 단단해져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점토판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성은 좋지 않았다.
긴 글을 여러 장에 기록하면 무게가 상당해지고, 종이처럼 접어서 가볍게 가지고 다니기도 어렵다.
기록의 양이 많아질수록 보관 공간도 필요했다.
오래 보존하는 데는 유리할 수 있지만 가볍게 들고 다니며 기록하기에는 불편한 재료였던 셈이다.
이집트에서는 식물이 기록 매체로 변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전혀 다른 재료가 발달했다.
바로 파피루스(papyrus)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주변에서 자라던 식물이다.
사람들은 이 식물의 줄기 안쪽 부분을 얇게 잘라 여러 조각을 나란히 놓고, 그 위에 다른 조각을 교차하도록 배열한 뒤 압착하고 말려 글을 쓸 수 있는 표면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종이와 겉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조 방식은 다르다.
종이는 일반적으로 식물성 섬유를 풀어 물에 분산시킨 뒤 얇은 층으로 떠서 말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고대 파피루스는 식물 줄기를 잘라 만든 띠를 겹쳐 하나의 시트로 만드는 방식이다.
따라서 파피루스를 현대적인 의미의 종이와 똑같은 물건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파피루스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점토판보다 가볍다는 것이었다.
여러 장을 이어 붙여 길게 만든 뒤 돌돌 말아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보관할 수도 있었다.
문서의 이동과 보관이라는 측면에서 점토판과는 상당히 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행정문서와 편지뿐 아니라 종교적인 기록과 문학 작품 등 여러 종류의 글이 파피루스에 기록됐다.
또 이집트에서만 사용된 것도 아니다. 지중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기록 재료로 활용됐다.
하지만 파피루스 역시 어디에서나 똑같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아니었다.
재료가 되는 식물과 생산 환경, 교역망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대나무와 나무에 글을 남겼다
동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기록문화가 발전했다.
종이가 널리 사용되기 전 중국에서는 죽간과 목간이 중요한 기록 재료였다.
죽간은 대나무를 길고 좁은 조각으로 가공해 글을 적은 것이고, 목간은 나무 조각을 이용한 기록물이다.
한 조각에 적을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긴 내용을 기록할 때는 여러 개의 죽간을 끈으로 연결해 하나의 문서처럼 만들기도 했다.
이 모습을 상상해 보면 현대의 책과는 상당히 다르다.
종이책은 수백 쪽이어도 한 손으로 들 수 있지만 대나무 조각 수십 개가 연결된 기록물은 훨씬 무겁고 부피도 커질 수 있다.
보관과 운반에도 그만큼 부담이 생긴다.
그럼에도 죽간과 목간은 오랫동안 행정과 학문 등 다양한 기록에 활용됐다.
특히 목간은 고대 동아시아의 행정과 교통, 일상적인 기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유적에서 목간이 발견되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내용을 기록했고 문서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여기에서도 기록 재료와 문자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글의 내용에 먼저 관심을 갖지만 과거 사람에게는 글을 담을 물리적인 공간 자체가 귀한 자원이었다.
얼마나 많이 적을 수 있는지, 얼마나 무거운지, 어떻게 묶어 보관할 것인지까지 기록 과정의 일부였다.
돌과 금속은 오래 남겨야 하는 기록에 유리했다
종이가 없다고 해서 모든 글을 휴대 가능한 재료에만 기록했던 것은 아니다.
돌 역시 인류가 오래전부터 사용한 중요한 기록 재료다.
비석이나 건축물의 표면에 문자를 새기면 쉽게 이동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왕의 업적이나 법령, 기념할 사건처럼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내용에 돌이 사용된 사례를 여러 고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속에 문자를 새기거나 주조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돌과 금속의 장점은 내구성이다.
반면 제작에는 상당한 노동이 필요하고 일상적으로 긴 글을 빠르게 작성하기에는 불편하다.
이 차이는 지금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메모할 내용을 돌판에 새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래 남길 수는 있겠지만 장보기 목록이나 간단한 전달사항을 기록하기 위해 매번 돌을 깎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결국 기록의 목적에 따라 적합한 재료가 달랐다.
오랫동안 남겨야 하는 기록과 빠르게 작성해 전달해야 하는 기록은 같은 재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록 재료가 달라지면 글의 모습도 달라졌다
점토판, 파피루스, 죽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재료만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록 방식 전체가 달라진다.
점토에는 도구를 눌러 자국을 만들 수 있다.
파피루스에는 잉크를 이용해 글을 쓸 수 있다.
죽간과 목간 역시 표면에 글씨를 적는 방식으로 활용됐다.
기록을 읽는 방법도 달랐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필요한 부분을 찾기 위해 말린 부분을 펼쳐가며 읽어야 한다.
여러 죽간을 연결한 기록물은 각각의 조각이 흩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점토판이 많아지면 수많은 판 가운데 필요한 기록을 찾고 정리하는 방법도 필요해진다.
즉 기록 매체의 변화는 단순히 ‘쓰기 편한 재료가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성, 보관, 분류, 이동, 열람의 방식이 함께 변하는 과정이었다.
이 점은 이후 종이가 등장했을 때 왜 그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렇다면 가죽에도 글을 썼을까?
식물이나 흙만 기록 재료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동물의 가죽을 가공해 글을 쓰는 재료도 오랫동안 활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이후 유럽의 필사본 역사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양피지(parchment)다.
양이나 염소, 송아지 등의 가죽을 적절하게 가공해 글을 쓸 수 있는 표면으로 만들었다.
양피지는 비교적 튼튼하고 양면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여러 장을 겹쳐 묶어 오늘날 책과 비슷하게 넘겨 읽는 형태의 문서를 만드는 데 적합했다.
그러나 동물 가죽을 가공해야 하므로 많은 양을 간단하게 생산하기는 어려웠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도 상당한 재료와 노동이 필요했다.
따라서 종이가 널리 보급되기 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지금처럼 값싼 복사용지 한 장을 꺼내 쓰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일이었다.
무엇에 기록할지부터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종이는 이전 기록 재료의 불편함을 줄였다
이렇게 여러 기록 재료를 살펴보면 종이가 가진 특징이 보이기 시작한다.
종이는 점토판보다 훨씬 가볍다.
죽간처럼 여러 개의 단단한 조각을 묶지 않아도 넓은 면에 많은 글을 기록할 수 있다.
돌처럼 글자를 하나씩 새길 필요도 없다.
적절한 크기로 자르고 여러 장을 겹치거나 묶을 수도 있다.
물론 종이가 처음 등장했다고 곧바로 모든 기존 기록 재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기술이 달랐고 이미 형성된 기록문화도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록 매체가 사회에 퍼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또 오래된 재료가 새로운 재료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중요한 것은 종이가 기록을 더 가볍게 만들고 대량의 글을 다루기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후 제지 기술이 개선되고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종이는 행정과 학문, 책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기록 매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음 질문이 생긴다.
이렇게 편리한 종이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마무리
종이가 없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기록을 포기하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토를 판으로 만들어 글을 남겼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식물을 기록 매체로 활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대나무와 나무를 가공한 죽간과 목간이 사용됐으며, 돌과 금속은 오랫동안 남겨야 할 기록에 활용됐다.
동물 가죽을 가공한 양피지도 중요한 기록 재료였다.
각각의 재료에는 장점과 한계가 있었다.
점토는 오래 보존할 수 있지만 무거웠고 파피루스는 비교적 가볍지만 생산할 수 있는 환경과 재료의 영향을 받았다. 죽간은 튼튼하지만 긴 기록이 많아질수록 무겁고 부피가 커질 수 있었다.
이런 다양한 기록 매체가 존재했던 세계에 새로운 재료가 등장한다.
식물 섬유를 풀어 얇은 한 장의 기록면으로 만드는 종이다.
하지만 종이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채륜이 종이를 발명했다”라는 한 문장에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다음 2편에서는 종이는 정말 채륜 한 사람이 처음 발명한 것인지, 고대 중국에서 종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FAQ
Q1. 파피루스는 종이의 한 종류인가요?
오늘날 일반적으로 말하는 종이와는 제조 방식이 다릅니다. 파피루스는 식물 줄기에서 얻은 띠 형태의 재료를 배열하고 겹쳐 압착해 만드는 방식입니다. 종이는 식물성 섬유를 풀어 물에 분산시킨 뒤 얇은 층으로 만들어 건조하는 방식이 기본이므로 둘을 같은 재료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Q2. 점토판에는 어떤 내용을 기록했나요?
행정과 경제 관련 기록뿐 아니라 계약, 편지, 학습용 글, 문학 등 다양한 내용이 점토판에 남았습니다. 오늘날 발견되는 점토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생활과 제도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Q3. 종이가 등장하면 죽간이나 양피지는 바로 사라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록 재료가 등장해도 기존의 제작 방식과 사용 문화가 즉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별 생산 환경과 용도에 따라 여러 기록 재료가 오랜 기간 함께 사용됐으며, 종이 역시 제지 기술과 생산 기반이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 주요 기록 매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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