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휴지가 없다면 상당히 난감하다. 그만큼 화장지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너무나 당연한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가 화장지를 사용한 역사는 화장실 자체의 역사보다 훨씬 짧다.
종이가 없던 시대도 길었고, 종이가 발명된 뒤에도 한동안은 귀한 재료였다. 글을 쓰거나 기록하는 데 사용할 종이조차 값진 시대에 지금처럼 부드러운 종이를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화장지가 없던 시절에 무엇을 사용했을까?
하나의 답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했다. 물을 사용하기도 했고, 천이나 식물의 잎처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을 활용하기도 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나무나 다른 재료가 사용된 기록도 남아 있다.
화장지의 역사는 결국 사람들이 새로운 용도의 물건을 갑자기 발명한 이야기라기보다, 주변에서 구한 여러 재료가 ‘화장실에서만 사용하는 전용 종이’로 바뀌어간 과정에 가깝다.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주변의 재료를 이용했다
현대의 화장지는 어디서나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하얗고 부드러운 종이가 긴 띠 형태로 감겨 있고 필요한 만큼 뜯어서 사용한다.
과거에는 이렇게 표준화된 물건이 없었다.
기후와 생활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달랐기 때문에 용변 뒤에 사용하는 방법 역시 다양했다.
식물의 잎이나 풀처럼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경우도 있었고, 천 조각이나 다른 부드러운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도 있었다. 물을 이용해 씻는 문화도 여러 지역에서 발전했다.
고대 로마의 공중화장실과 관련해서는 막대 끝에 스펀지 같은 재료를 붙인 도구가 자주 소개된다. 다만 고대 자료의 해석과 실제 사용 방식에는 논의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화장지처럼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종이가 비교적 일찍 등장했기 때문에 종이를 위생 목적으로 사용한 기록도 다른 지역보다 이른 시기부터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중세 시기에 화장실 용도로 종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후에는 이러한 용도의 종이가 상당한 규모로 생산됐다는 기록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시 세계 어디에서나 종이를 화장지로 사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종이는 오랫동안 생산에 많은 수고가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종이를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었는지는 화장지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종이가 있어도 화장지로 쓰기에는 아까웠다
종이가 발명되었다고 곧바로 현대식 화장지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메모를 한 종이나 포장지를 쉽게 버리지만 과거의 종이는 지금보다 귀한 물건인 경우가 많았다. 종이를 만들려면 원료를 가공하고 여러 공정을 거쳐 얇은 장으로 만들어야 했다.
책 역시 손으로 베껴 만들던 시대가 길었다.
이런 환경에서 깨끗하고 새것인 종이를 오직 화장실에서 한 번 사용하기 위해 대량 소비하기는 쉽지 않았다.
종이 생산기술이 발전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인쇄물과 포장용 종이 등 사회에서 사용하는 종이의 양 자체가 증가했고, 비교적 저렴한 종이를 일상적인 소모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미 사용한 신문이나 카탈로그 같은 종이를 화장실에서 다시 활용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다만 인쇄용 종이는 애초에 피부에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현대의 화장지와 비교하면 질감이나 물에 젖었을 때의 성질도 다르다.
결국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화장실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종이였다.
화장실 전용 종이가 상품으로 등장하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화장실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종이가 상업적인 제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조지프 가예티(Joseph Gayetty)가 1857년 화장실용 종이 제품을 판매한 사례가 초기 상업용 화장지의 역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다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두루마리 휴지와는 모습이 달랐다.
종이를 낱장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이 점이 흥미롭다.
화장실 전용 종이가 등장했다고 해서 처음부터 둥근 두루마리 형태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의 상품화에서 중요한 변화는 ‘남는 종이를 가져다 쓰는 것’과 ‘처음부터 이 용도로 만든 종이를 구입하는 것’의 차이에 있었다.
화장지가 하나의 독립적인 생활용품이 된 것이다.
이후 종이 생산과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화장지는 점차 더 부드럽고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변화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가 등장한다.
바로 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둥글게 감아놓은 두루마리다.
화장지는 왜 두루마리 모양이 되었을까?
두루마리 화장지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사용하기에는 꽤 효율적인 형태다.
많은 양의 종이를 작은 공간에 보관할 수 있고 벽이나 거치대에 걸어놓은 상태에서 필요한 만큼만 당겨 사용할 수 있다.
낱장을 상자에 쌓아두는 것보다 종이가 흩어질 가능성도 적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에서 두루마리 형태의 화장지와 관련된 특허와 상품들이 등장했다. 이후 두루마리 화장지는 점차 오늘날과 비슷한 일상용품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해졌다.
절취선이다.
긴 종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어두면 가위가 없어도 필요한 부분을 쉽게 뜯을 수 있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휴지를 몇 칸 당겨 끊는 행동도 사실은 보관과 사용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제품 설계의 결과다.
화장지의 폭, 한 칸의 길이, 겹수도 제품에 따라 달라졌다.
한 겹의 종이만 사용하는 제품도 있고 여러 겹을 겹쳐 부드러움과 사용감을 높인 제품도 있다.
과거에 주변에서 구한 재료를 그때그때 사용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재료 자체가 하나의 전문적인 생활용품으로 발전한 것이다.
화장지는 왜 물을 만나면 쉽게 약해질까?
화장지는 일반적인 복사용지와 만져보면 느낌부터 다르다.
부드럽고 얇으며 물에 젖으면 쉽게 힘을 잃는다.
이것은 화장지에서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수세식 변기가 보편화된 환경에서는 사용한 화장지가 배수 과정에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화장지가 물속에서도 매우 질기게 형태를 유지한다면 배관과 하수 처리 과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화장지는 사용 중에는 필요한 정도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물에 들어갔을 때는 비교적 쉽게 풀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흔히 사용하는 다른 종이제품과의 차이도 생긴다.
물티슈나 일부 두꺼운 종이제품은 화장지와 재질과 구조가 다르며 물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분해되지 않을 수 있다. 제품에 ‘변기에 버릴 수 있다’는 별도의 안내가 없는 경우에는 화장지와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현대의 화장지는 단순히 부드러운 종이가 아니다.
사람의 피부에 사용하는 편의성과 수세식 화장실이라는 환경을 함께 고려하면서 발전한 생활용품이다.
화장실이 바뀌자 화장지도 함께 바뀌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수세식 변기와 하수도를 떠올리면 화장지의 변화가 더 잘 보인다.
변소에 오물을 모아두던 시대와 물을 이용해 배수관으로 흘려보내는 시대는 화장실에서 필요한 물건도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식 화장실에서는 변기와 화장지가 서로 독립적인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용환경에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변기는 오물을 물로 이동시키고 화장지는 사용한 뒤 처리하기 쉽도록 만들어진다.
이처럼 생활도구는 혼자 발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도와 하수도가 변기의 사용방식을 바꾸고, 수세식 변기가 널리 사용되면서 그 주변에서 사용하는 물건도 그 환경에 맞게 달라진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종이 하나에도 산업의 변화가 숨어 있다.
종이가 귀했던 시대에는 주변의 다른 재료를 활용해야 했다. 종이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화장실 전용 종이를 만들 수 있었고, 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부드러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오늘날 화장실 벽에 걸린 휴지 한 롤은 너무 평범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평범한 물건이 가능해지기까지는 종이 생산과 가공, 대량생산, 수세식 화장실의 보급이라는 여러 변화가 필요했다.
이제 다음에는 화장실에서 욕실 쪽으로 시선을 옮겨볼 차례다.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용변을 처리하는 것뿐 아니라 몸과 옷, 생활용품을 씻는 방법도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세면대와 욕실에서 너무나 익숙한 물건 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비누다.
다음 글에서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비누로 몸을 씻기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비누가 처음부터 목욕용품이었는지, 과거에는 무엇을 씻는 데 사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상적인 세정용품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FAQ
화장지가 없던 시대에는 무엇을 사용했나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 물을 이용해 씻거나 천과 식물성 재료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전 세계 사람들이 화장지 이전에 한 가지 동일한 물건을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화장지는 처음부터 두루마리 형태였나요?
아니다. 19세기에 상업적으로 판매된 초기 화장지 가운데는 낱장 형태의 제품도 있었다. 이후 긴 종이를 둥글게 감은 두루마리 형태가 등장하고 절취선 같은 요소가 더해지면서 오늘날 익숙한 형태로 발전했다.
일반 종이나 물티슈를 화장지처럼 변기에 버려도 되나요?
화장지와 다른 종이제품이나 물티슈는 물속에서 풀어지는 성질이 다를 수 있다. 특히 물티슈는 제품에 따라 물속에서도 비교적 질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 배관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제품의 폐기 안내와 거주 지역의 하수 처리 지침에 맞게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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