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생활에서 의자생활로 바뀌자 집 안의 가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집 안의 가구를 하나씩 살펴보면 서로 전혀 다른 물건처럼 보인다.

의자는 앉는 가구이고, 책상은 읽고 쓰는 가구다. 침대에서는 잠을 자고, 옷장과 서랍장에는 물건을 보관한다. 소파는 가족이 함께 앉아 쉬는 장소가 된다.

그런데 이 가구들을 한 공간에 놓고 보면 공통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사람의 몸을 바닥에서 일정한 높이로 올려놓는다는 점이다.

의자에 앉으면 몸이 바닥에서 올라간다. 자연스럽게 책상과 식탁도 높아진다. 침대를 사용하면 잠자리 역시 바닥에서 올라가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넣는 수납공간의 위치도 서 있는 사람과 의자에 앉은 사람의 손이 닿기 편한 높이에 맞춰진다.

그래서 바닥생활에서 의자생활로의 변화는 단순히 의자 하나를 집 안에 들여놓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이 머무는 높이가 달라지면서 주변의 가구도 함께 달라져야 했다.

바닥에 앉으면 가구도 낮아진다

바닥생활에서는 사람이 앉는 위치 자체가 낮다.

방석이나 자리를 사용하더라도 몸은 바닥 가까이에 머문다.

이 상태에서 높은 식탁이나 책상을 사용하려면 오히려 불편하다.

따라서 음식을 놓는 상이나 책을 올려놓는 서안 같은 가구도 앉은 자세에서 손이 편하게 닿을 정도로 낮게 만들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국의 전통적인 좌식생활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사람들은 방바닥에 앉아 낮은 상을 사용했고, 잠을 잘 때에는 바닥에 요와 이불을 펼칠 수 있었다. 사용이 끝나면 상을 옮기고 침구를 정리해 같은 방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는 가구가 방의 기능을 완전히 고정하지 않는다.

식사를 할 때는 식사 공간이 되고, 상을 치우면 사람들이 앉아 대화하는 공간이 된다. 밤에는 침구를 펼쳐 잠자리로 바뀔 수도 있다.

가구가 작고 낮으며 이동하기 쉬울수록 한 방을 여러 목적으로 사용하기 편하다.

의자가 들어오면 책상과 식탁도 함께 높아진다

의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의 앉는 높이다.

사람이 바닥이 아니라 의자에 앉으면 상체와 팔의 위치가 높아진다.

그런데 기존의 낮은 상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몸을 크게 숙여야 한다.

결국 작업면도 사람의 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의자와 책상은 서로 떨어져 생각하기 어려운 가구다.

의자의 좌판 높이가 정해지면 책상은 앉았을 때 팔을 올려놓고 작업하기 편한 높이가 필요하다. 식탁 역시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높이로 올라간다.

가구 하나의 높이가 다른 가구의 높이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오늘날 식탁과 식탁의자를 한 세트처럼 판매하는 이유도 이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자는 편한데 식탁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으면 식사 자세가 불편해진다.

책상과 의자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의자생활은 집 안에 높은 가구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구의 기준 높이를 함께 바꾼 변화였다.

침대가 들어오자 잠자는 장소도 고정되기 시작했다

바닥생활과 의자생활의 차이는 잠자리에서도 나타난다.

요와 이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는 아침에 침구를 걷어 보관할 수 있다.

그러면 밤에 잠을 잤던 장소를 낮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큰 침대는 쉽게 치울 수 없다.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가 놓인 공간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잠자리로 남는다.

이렇게 되면 방의 성격도 보다 분명해진다.

침대가 놓인 방은 자연스럽게 침실의 역할을 갖는다.

침대 옆에는 작은 테이블이나 수납가구가 필요해질 수 있고 옷을 갈아입는 공간과 옷장도 가까운 곳에 배치할 수 있다.

가구 하나가 다른 가구의 위치까지 결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침대가 바닥에서 올라가면서 잠자리의 구조도 달라졌다.

프레임 위에 몸을 받쳐주는 매트리스를 놓고, 침대 주변에는 그 높이에 맞는 생활도구가 배치된다.

바닥에서 이루어지던 생활이 여러 가구 위로 나뉘어 올라간 셈이다.

수납가구도 사람의 손이 닿는 높이를 따라 달라졌다

가구의 높이가 달라지면 물건을 보관하는 위치도 영향을 받는다.

바닥에 앉아서 생활한다면 낮은 상자나 궤에 물건을 넣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의자에 앉거나 서서 움직이는 생활이 중심이 되면 매번 바닥 가까이 몸을 낮춰 물건을 꺼내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다.

수납공간을 위로 올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랍을 여러 층으로 쌓은 서랍장은 서 있는 상태에서도 여러 물건에 접근할 수 있다.

옷장은 사람의 키에 가까운 높이까지 공간을 사용하고, 내부에는 옷을 걸 수 있는 봉과 선반을 배치한다.

책장 역시 벽을 따라 위쪽 공간을 활용한다.

물론 높은 수납가구가 모두 의자생활 때문에 생겨났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수납할 물건의 증가, 주거공간의 크기, 목공기술과 생활양식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영향을 주었다.

다만 사람이 주로 어떤 자세로 생활하는가는 가구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소파는 바닥의 공동생활을 가구 위로 옮겼다

바닥생활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 별도의 긴 좌석이 없어도 된다.

방바닥에 자리를 깔고 사람들이 둘러앉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의자생활에서는 사람이 앉을 자리가 가구로 구체화된다.

한 사람이 앉는 의자가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벤치와 소파가 있다.

특히 소파가 거실의 중심에 놓이면 가족이 모이는 위치도 어느 정도 정해진다.

바닥 전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던 생활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여기에 테이블과 텔레비전 같은 물건이 더해지면서 거실의 배치도 일정한 형태를 갖게 된다.

소파가 한쪽에 놓이고 그 앞에는 낮은 테이블이 있으며 맞은편에는 화면이나 다른 가구가 배치되는 방식이다.

가구가 사람의 행동을 따라 만들어지지만, 일단 가구가 놓이고 나면 반대로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기도 한다.

소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곳에 앉게 되고 식탁이 있으면 식사를 하는 장소도 정해진다.

가구가 많아지면서 방마다 역할이 뚜렷해졌다

고정된 대형 가구가 적은 공간은 필요에 따라 용도를 바꾸기 쉽다.

반대로 침대와 책상, 식탁, 소파처럼 크고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가구가 늘어나면 공간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침대가 있는 곳은 침실이 된다.

책상과 책장이 놓인 곳은 공부하거나 일하는 공간이 된다.

식탁이 놓인 곳에서는 식사가 이루어지고, 소파가 놓인 공간은 가족이 쉬거나 손님을 맞는 장소가 된다.

물론 현대 주택에서도 하나의 공간을 여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다.

작은 집에서는 거실에 책상을 놓기도 하고 식탁이 업무용 책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구가 특정한 행동을 위한 장소를 만들어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집이 단순히 벽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가구의 배치에 의해서도 여러 생활영역으로 나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구는 집 안에 들어가는 물건인 동시에 공간을 만드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집에서는 두 생활방식이 완전히 나뉘지 않았다

바닥생활에서 의자생활로의 변화를 ‘옛날 방식이 사라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완전히 교체된 과정’으로 생각하면 실제 생활의 모습을 놓치기 쉽다.

한국의 현대 주거에서는 두 방식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식사는 높은 식탁과 의자에서 하지만 거실에서는 소파 아래 바닥에 앉기도 한다.

침실에는 침대를 놓으면서도 바닥 난방을 사용한다.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 놀고, 필요하면 낮은 테이블을 펼쳐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좌식생활과 현대적인 입식 가구가 함께 존재한다.

특히 온돌에서 이어진 바닥 난방은 바닥을 단순히 걸어 다니는 면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앉고 머물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유지하게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현대의 한국 가정에서는 높은 가구와 낮은 생활도구를 동시에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생활방식은 새로운 가구가 들어온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교체되지 않는다.

기존의 습관과 새로운 도구가 만나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한다.

산업화는 가구의 변화를 더 빠르게 만들었다

의자생활이 널리 퍼지는 과정에는 가구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의 변화도 중요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산업화 이후에는 목공기계와 규격화된 부품을 이용해 비슷한 가구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기가 쉬워졌다.

의자와 책상, 침대 같은 가구를 반드시 집 근처의 장인에게 하나씩 주문할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도시화와 유통망의 발달도 가구의 보급에 영향을 주었다.

공장에서 생산한 가구를 여러 지역에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 가운데 자신의 집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20세기에는 아파트와 같은 새로운 주거형태가 확산되면서 일정한 크기의 방에 놓기 좋은 규격 가구의 중요성도 커졌다.

이제 가구는 집을 지은 뒤 필요에 따라 하나씩 만들어 넣는 물건만이 아니었다.

주택의 공간과 대량생산된 가구가 서로의 크기와 사용법에 영향을 주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결국 달라진 것은 가구보다 ‘사람의 높이’였다

이번 가구 시리즈에서는 의자에서 시작해 책상, 침대, 옷장, 서랍장과 소파까지 여러 생활가구를 살펴봤다.

각각의 역사는 달랐지만 한곳에 모아보면 공통된 흐름이 보인다.

사람이 집 안에서 어떤 자세로 생활하는지가 가구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바닥에 앉으면 상과 책상이 낮아진다.

의자에 앉으면 작업면과 식탁이 올라간다.

바닥에 침구를 펴면 잠자리를 치울 수 있지만 침대를 놓으면 잠자는 장소가 고정된다.

물건이 늘어나면 상자 하나로 부족해지고 옷장과 서랍장, 책장처럼 물건마다 다른 수납공간이 필요해진다.

여러 사람이 바닥에 둘러앉던 공간에는 의자와 소파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높이의 공동생활 공간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바닥생활에서 의자생활로의 변화는 단순히 ‘바닥 대신 의자에 앉게 된 역사’라고만 볼 수 없다.

사람의 몸이 머무는 높이가 바뀌자 집 안의 거의 모든 가구가 그 높이를 따라 다시 설계되었다.

그리고 가구가 달라지자 집 안의 공간도 침실, 식사 공간, 작업 공간, 거실처럼 각기 다른 역할을 더욱 뚜렷하게 갖게 됐다.

결국 의자와 책상, 침대와 소파는 따로 떨어진 물건이 아니다.

사람이 집 안에서 앉고, 먹고, 일하고, 자고, 물건을 보관하는 방법이 변하면서 함께 만들어진 하나의 생활환경이다.

가구의 모양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 사람들이 집 안에서 어떤 자세로 하루를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FAQ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바닥생활이 완전히 의자생활로 바뀌었나요?

한 시점을 기준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근현대에 학교와 사무실, 식당 등에서 의자와 책상을 사용하는 생활이 확대되고 현대식 주택과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가정에서도 입식 가구가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좌식생활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두 방식이 함께 나타난다.

의자를 사용하면 왜 책상과 식탁도 높아져야 하나요?

의자에 앉으면 바닥에 앉았을 때보다 팔과 상체의 위치가 높아진다. 따라서 작업하거나 식사하는 면도 그에 맞는 높이에 있어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의자 높이와 책상·식탁 높이가 서로 관련되는 이유다.

가구가 많아지면 집의 공간도 달라지나요?

그렇다. 침대나 소파처럼 크고 쉽게 옮기기 어려운 가구는 특정한 공간의 용도를 어느 정도 고정한다. 침대가 놓이면 침실, 식탁이 놓이면 식사 공간처럼 가구의 배치가 방의 역할을 구분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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