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문을 여닫으면서도 그 존재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생활도구다. 음료를 차갑게 두고, 남은 음식을 보관하고, 채소와 고기처럼 쉽게 상하는 식재료를 며칠 동안 보관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전기가 잠시 끊겨 냉장고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얼마나 많은 음식을 냉장고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실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장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새로운 냉장고가 발명됐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가정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기로 작동하는 냉장고가 가정에 자리 잡기 전에는 커다란 얼음을 넣어 내부를 차갑게 만드는 ‘얼음상자’가 사용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겨울에 얻은 자연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한겨울의 얼음에서 시작해 사계절 작동하는 전기냉장고에 도달했을까?
여름에 얼음을 사용하기 위해 겨울부터 준비했다
기계로 냉기를 만들 수 없었던 시대에 가장 확실하게 차가운 것은 자연에서 얻은 얼음이었다.
문제는 계절이었다. 겨울에는 강이나 호수 등에서 얼음을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음식이 쉽게 상하는 더운 계절에는 자연 얼음을 구하기 어렵다. 따라서 겨울에 확보한 얼음을 최대한 오랫동안 녹지 않게 보관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도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이 사용됐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의 석빙고를 떠올릴 수 있다. 석빙고는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이용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이런 시설을 오늘날의 냉동고와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냉동고는 전기와 냉매 등을 이용해 내부의 열을 계속 밖으로 이동시키지만, 전통적인 얼음 저장 시설은 이미 만들어진 얼음이 최대한 천천히 녹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벽과 지붕, 배수와 환기 등을 고려해 외부의 열이 쉽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녹은 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당시의 과제는 ‘어떻게 차가운 온도를 만들어낼까?’가 아니라 ‘겨울에 얻은 차가움을 어떻게 오래 간직할까?’에 가까웠다.
이 생각은 훗날 가정에서 사용된 얼음상자에도 이어진다.
얼음상자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냉장고에 가까웠다
전기냉장고가 보급되기 전에는 얼음 자체를 냉각원으로 사용하는 아이스박스, 즉 얼음상자가 널리 사용됐다.
기본적인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단열된 상자 안에 큰 얼음 덩어리를 넣으면 얼음이 주변의 열을 흡수하면서 내부 온도가 낮아진다. 그 안에 음식을 함께 두어 상온보다 서늘한 환경에서 보관하는 것이다.
겉모습만 보면 오늘날의 냉장고와 어느 정도 비슷한 형태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얼음상자에는 스스로 차가움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없었다.
얼음이 녹으면 새로운 얼음을 넣어야 했고, 녹으면서 생긴 물도 처리해야 했다. 따라서 얼음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했다. 얼음을 공급하고 배달하는 일 역시 냉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이 방식은 현대의 냉장고처럼 온도를 정밀하게 조절하기도 어려웠다. 얼음의 양이나 외부 기온, 상자를 여닫는 횟수 등에 따라 내부 상태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얼음상자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았다.
음식을 차갑게 보관하는 공간을 집 안에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후 가정용 냉장고와 연결되는 중요한 단계였기 때문이다.
얼음을 넣는 대신 기계가 직접 냉각하기 시작했다
냉장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들려면 결국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얼음이 없어도 차갑게 만들 수 없을까?’
인공적으로 냉각하는 기술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여러 발명가와 기술자들이 냉동 장치를 연구했고, 냉매의 압축과 팽창 등을 이용하여 열을 이동시키는 기계식 냉동 기술이 발전했다.
이 변화에서 중요한 점은 기계가 단순히 ‘차가운 것’을 만들어낸다고 이해하기보다 내부의 열을 외부로 이동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냉장고 안에 있는 열을 냉매와 압축기 등의 장치를 이용해 밖으로 내보내면 내부 온도를 주변보다 낮게 유지할 수 있다. 오늘날 사용하는 냉장고 역시 세부적인 기술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열의 이동을 이용한다.
초기의 기계식 냉장 설비는 크기와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간편하게 사용하는 물건과는 거리가 있었다. 상업과 산업 분야에서 냉장 기술이 활용되고 기술이 개선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가정용 냉장고가 등장할 기반이 마련됐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냉장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발명’과 ‘보급’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가전제품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즉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격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제품의 성능과 안전성도 개선되어야 한다. 전기냉장고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점차 가정의 생활도구가 됐다.
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부엌의 생활 방식도 달라졌다
얼음상자와 전기냉장고의 가장 큰 차이는 단순히 전기를 사용한다는 것만은 아니다.
얼음상자는 얼음이 녹으면 다시 채워야 했다. 반면 전기냉장고는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동안 냉각 장치를 반복해서 작동시켜 내부를 낮은 온도로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이 얼음을 구해 넣어야 했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음식 보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하기 쉬운 식재료를 가정에서 관리하기가 한층 편리해졌고, 먹고 남은 음식을 보관하는 것도 쉬워졌다. 장을 본 뒤 여러 식재료를 냉장 공간에 나누어 넣어두는 오늘날의 생활 방식도 안정적인 가정용 냉장 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냉장고 자체도 계속 변화했다.
냉동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고, 냉장실 내부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거나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냉장고는 단순히 음식을 차갑게 만드는 상자에서 여러 종류의 식품을 각기 다른 조건으로 관리하는 가전제품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냉장고 안에 얼음이 있다고 해도 얼음이 녹으면서 냉장고 전체를 식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냉장고가 먼저 냉기를 만들어 물을 얼음으로 만든다.
과거와 관계가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예전에는 얼음이 있어야 음식을 차갑게 보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냉장고가 있기 때문에 집에서 얼음을 만들 수 있다.
매일 사용하는 냉장고의 문을 열어보면 이 변화가 얼마나 큰지 쉽게 지나치기 쉽다. 자연의 추위에 의존하던 시대에는 겨울에 얻은 얼음을 보관해야 했고, 이후에는 얼음을 상자에 넣어 음식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계식 냉각 기술과 전기의 보급으로 계절과 관계없이 집 안에서 낮은 온도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냉장고의 역사는 결국 ‘얼음을 잘 보관하는 기술’에서 ‘필요할 때 스스로 냉각하는 기술’로 넘어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음식만큼이나 매일 확보해야 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물이다. 지금은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나오지만 수도 시설이 없던 집에서는 필요한 물을 직접 구해 와야 했다. 다음 글에서는 수돗물이 없던 시절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을 어디에서 얻었고, 집까지 어떻게 옮겼는지 살펴본다.
FAQ
얼음상자는 지금의 냉장고와 같은 물건인가요?
목적은 비슷하지만 작동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얼음상자는 내부에 넣어둔 얼음으로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얼음이 녹으면 새 얼음을 공급해야 한다. 전기냉장고는 냉매와 압축기 등을 이용한 냉각 장치를 작동시켜 내부의 열을 외부로 이동시킨다.
전기냉장고가 발명되자마자 모든 가정에서 사용했나요?
그렇지 않다. 초기 가정용 전기냉장고가 등장한 뒤에도 가격, 전력 공급 환경, 제품의 성능과 안전성 등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했다. 따라서 냉장고의 발명 시점과 일반 가정에 널리 보급된 시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석빙고는 옛날 냉장고라고 할 수 있나요?
비슷한 목적이 일부 있었지만 현대 냉장고와 작동 원리는 다르다. 석빙고는 기계적으로 냉기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아니라 겨울에 채취한 자연 얼음을 가능한 오래 보관하기 위한 저장 시설이었다. 그래서 현대적인 냉장고라기보다는 자연의 낮은 온도를 저장하고 활용했던 시설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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