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같은 책을 수천 권 만드는 일이 특별하지 않다.
원고가 완성되면 인쇄와 제본 과정을 거쳐 동일한 내용의 책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전자책이라면 종이 없이도 같은 내용을 수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쇄술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책을 한 권 더 만들고 싶다면 기존 책을 보면서 내용을 다시 옮겨 적어야 했다.
페이지 하나를 복사하는 데에도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중세의 책 제작을 단순히 “수도사가 책상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글씨를 썼다”는 모습으로만 생각하면 실제 과정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
기록할 재료를 준비해야 했고 페이지의 위치를 계획해야 했다. 본문을 쓰는 사람과 화려한 장식을 담당하는 사람이 다를 수도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여러 장을 하나의 책으로 묶는 제본 작업도 필요했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수도원 밖의 도시에서도 전문 필사자와 서적 제작자들이 활동했다.
책 한 권은 말 그대로 여러 재료와 기술, 노동이 모여 완성되는 물건이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책 제작은 시작됐다
필사본 제작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당연히 글을 적을 재료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세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양피지가 중요한 기록 재료로 사용됐다.
가죽을 가공해 양피지를 만든 뒤에는 책에 사용할 크기에 맞춰 재료를 준비했다.
양피지를 접으면 한 번에 여러 페이지를 구성할 수 있다.
접힌 여러 장을 포개 하나의 작은 묶음으로 만들고, 이런 묶음을 여러 개 연결해 한 권의 책을 구성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영어에서는 이런 묶음을 퀘이어(quire) 또는 게더링(gathering)이라고 부른다.
현대 책을 자세히 보면 여러 장의 종이가 일정한 단위로 접히고 묶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오래된 제본 방식과 연결된다.
하지만 기록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것만으로 바로 글씨를 쓰지는 않았다.
페이지에 글이 들어갈 공간부터 정해야 했다.
글씨가 시작될 위치와 끝날 위치를 정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만들었다.
양피지에 작은 구멍을 내 기준점을 표시하고 그 위치를 이용해 선을 긋는 방법도 사용됐다.
오늘날 공책에 이미 줄이 그어져 있는 것과 비슷한 역할이다.
다만 당시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 직접 그 작업을 해야 했다.
오래된 필사본을 가까이서 보면 글씨 주변에 희미한 선이나 작은 구멍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완성된 글만 보면 보이지 않던 책 제작의 작업 과정이 페이지 자체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필사자는 단순히 글자를 베껴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페이지 준비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글을 옮겨 적는다.
이 작업을 담당하는 사람을 흔히 필사자(scribe)라고 부른다.
중세 초기 유럽의 책 제작을 이야기할 때 수도원과 수도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수도원은 종교 문헌을 비롯한 여러 책을 보관하고 복제하는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일부 수도원에서는 필사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흔히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중세 필사본이 수도원 스크립토리움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시대가 흐르고 도시와 대학이 성장하면서 수도원 밖에서도 책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전문적인 필사자와 서적상, 장식가 등이 활동하면서 책 제작이 도시의 전문적인 일로 발전하기도 했다.
필사자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도구 가운데 하나는 깃털을 다듬어 만든 펜이었다.
펜촉을 적절한 형태로 깎고 잉크를 묻혀 글씨를 썼다.
글씨체 역시 아무렇게나 선택한 것이 아니다.
시대와 지역, 문서의 종류에 따라 여러 서체가 사용됐다.
글씨를 일정한 크기와 간격으로 유지하는 것은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수십 장, 때로는 훨씬 많은 페이지를 같은 형태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래된 필사본을 보면서 느끼는 정돈된 모습 뒤에는 반복적인 훈련과 노동이 있었다.
필사하다 실수하면 어떻게 했을까?
손으로 긴 글을 옮겨 적으면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단어 하나를 잘못 적을 수도 있고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는 부분에서 한 줄을 건너뛸 수도 있다.
같은 표현을 두 번 쓰는 경우도 생긴다.
컴퓨터라면 삭제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양피지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
그래도 수정 방법은 있었다.
양피지 표면의 잘못 쓴 부분을 조심스럽게 긁어내고 다시 글씨를 쓰는 방식이 사용될 수 있었다.
빠진 내용을 페이지 가장자리인 여백에 추가하고 표시를 이용해 본문의 어느 부분에 들어가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오래된 필사본의 여백에서 발견되는 작은 표시와 추가 문장 가운데 일부는 이런 수정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차이가 단순한 실수는 아니었다.
필사자가 원문에 설명을 덧붙이거나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서 내용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본을 다시 다른 사람이 베끼면 변화된 내용이 다음 사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같은 고대·중세 문헌이라도 남아 있는 여러 필사본의 문장이 완전히 같지 않은 경우가 있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여러 사본을 비교하면서 어떤 표현이 더 오래된 형태에 가까운지 살펴본다.
필사본은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복제되는 과정의 흔적까지 함께 가진 기록물인 셈이다.
본문이 완성돼도 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중세의 화려한 필사본을 보면 첫 글자가 유난히 크게 그려진 페이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식물무늬나 동물이 글자 주변에 그려져 있기도 하고, 종교적인 장면이 작은 그림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일부 고급 필사본에는 금을 이용한 장식까지 사용됐다.
이런 장식 작업을 흔히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이라고 부른다.
본문을 쓰는 필사자와 그림을 그리는 장식가가 항상 같은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책 제작이 전문화된 환경에서는 서로 다른 작업자가 각자의 부분을 맡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필사자는 그림이나 큰 머리글자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두고 본문을 먼저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장식을 담당하는 사람이 빈 공간에 그림이나 머리글자를 넣었다.
재미있는 흔적도 남아 있다.
어떤 미완성 필사본에서는 장식이 들어가야 할 공간이 그대로 비어 있기도 한다.
작업 순서가 중간에서 멈춘 덕분에 오히려 당시 책이 어떤 단계로 제작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화려한 장식은 단순히 예쁘게 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문단의 시작을 구분하거나 독자가 내용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책의 디자인 역시 정보를 읽는 방법과 연결되어 있었다.
금빛 페이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고급 필사본을 보면 지금도 빛을 반사하는 금빛 부분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장식에는 실제 금을 아주 얇게 만든 금박 등이 사용될 수 있었다.
금박을 붙일 부분을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금을 올린 뒤 표면을 다듬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위나 주변에 여러 색의 안료로 그림을 완성했다.
안료 역시 현대의 물감 튜브처럼 바로 꺼내 쓰는 것이 아니었다.
광물이나 식물 등 다양한 재료에서 색을 얻었고, 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해야 했다.
일부 재료는 구하기 어렵거나 비쌌다.
따라서 매우 화려한 필사본은 내용뿐 아니라 재료와 제작 과정 자체에서도 상당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중세의 책을 오늘날의 평범한 문고본과 같은 소비재로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중요한 종교 문헌이나 권력자가 주문한 책은 기록 매체인 동시에 재력과 신앙, 권위를 보여주는 물건이 될 수 있었다.
대학이 성장하자 책을 만드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세 후기에 유럽의 도시와 대학이 성장하면서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교수와 학생에게는 수업과 연구에 사용할 문헌이 필요했다.
문제는 여전히 복제 속도였다.
한 사람이 책 한 권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쓰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환경에서 책을 더 효율적으로 복제하기 위한 방식도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중세 대학 문화와 관련해 알려진 것이 페치아(pecia) 제도다.
책의 공인된 원본을 여러 부분으로 나눈 뒤 각각의 부분을 빌려 필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한 권 전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 부분을 동시에 필사할 수 있다.
오늘날 여러 사람이 하나의 긴 문서를 구역별로 나눠 작업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물론 모든 지역과 모든 책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페치아 제도는 인쇄기 이전에도 증가하는 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이 복제 과정을 효율화하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록 기술은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부터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흩어진 페이지를 한 권으로 묶어야 했다
글과 장식이 완성됐다고 바로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준비된 여러 페이지 묶음을 올바른 순서로 정리한 뒤 서로 연결해야 한다.
묶음을 실 등으로 꿰매고 책의 구조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후 앞뒤를 보호할 표지를 붙인다.
중세의 제본에는 나무판을 표지의 기반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위를 가죽으로 덮기도 했다.
책의 종류와 시대, 제작비에 따라 형태는 다양했다.
금속 장식이나 잠금장치가 달린 화려한 표지도 볼 수 있다.
책을 닫아두는 장치는 양피지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양피지는 습도 변화 등에 반응해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안정적으로 닫아두는 구조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즉 중세의 책은 단순히 글을 적은 종이나 가죽 묶음이 아니었다.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 글씨를 쓰는 사람, 장식하는 사람, 제본하는 사람 등 여러 기술이 결합된 하나의 제작품이었다.
책이 비쌌던 이유는 재료값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중세의 책이 귀했다는 말을 들으면 흔히 양피지가 비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록 재료는 중요한 비용 요소였다.
하지만 전체 과정을 살펴보면 책의 가치에는 훨씬 많은 요소가 들어간다.
양피지를 만드는 노동이 필요하다.
페이지를 계획하고 글씨를 옮겨 적어야 한다.
필사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숙련된 기술도 필요하다.
장식이 들어가면 별도의 재료와 작업이 추가된다.
마지막에는 제본까지 해야 한다.
책 한 권을 복제하려면 이 과정이 다시 필요하다.
이 구조에서는 책의 수를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
그래서 종이가 유럽에서 점차 널리 사용되면서 기록 재료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하지만 종이가 저렴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종이가 많아도 사람이 글을 한 글자씩 다시 써야 한다면 복제 속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록문화에는 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글을 손으로 베끼지 않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찍어내는 기술이다.
인쇄술 이전에도 책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인쇄라고 하면 흔히 15세기 유럽의 구텐베르크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인쇄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동아시아에서는 나무판에 글이나 그림을 새긴 뒤 먹을 묻혀 종이에 찍는 목판인쇄가 일찍부터 발전했다.
중국에서는 목판인쇄가 널리 활용됐고, 한반도에서도 불교 경전 등을 인쇄하는 데 목판 기술이 사용됐다.
또 금속활자 역시 유럽의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고려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따라서 “구텐베르크가 세계 최초로 인쇄술을 발명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의 역사적 중요성은 다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유럽에서 금속활자와 인쇄기, 잉크, 종이 생산 등이 결합하면서 책을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 체계가 빠르게 확산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종이가 필요했다.
책의 역사와 종이의 역사가 다시 만나는 지점이다.
마무리
인쇄술이 널리 사용되기 전의 책은 한 사람의 손에서 단순히 베껴 나온 물건이 아니었다.
먼저 양피지나 종이 같은 기록 재료를 준비하고 페이지의 크기와 글이 들어갈 공간을 정해야 했다.
필사자가 원문을 직접 옮겨 적고, 필요한 경우 다른 작업자가 머리글자와 그림, 금박 장식을 더했다.
완성된 여러 페이지 묶음은 다시 꿰매고 표지를 붙이는 제본 과정을 거쳤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도시와 대학이 성장하면서 전문 필사자와 서적 제작자도 활발하게 활동했고, 페치아처럼 책을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복제하기 위한 방법도 사용됐다.
그래도 근본적인 한계는 남아 있었다.
새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여전히 누군가가 글을 다시 옮겨 적어야 했다.
이 한계를 크게 바꾼 것이 인쇄 기술이다.
하지만 다음 글에서는 인쇄술로 바로 넘어가기 전에, 책과 문서를 받쳐준 재료 자체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종이는 세계로 퍼졌지만 오랫동안 결코 지금처럼 흔하고 값싼 물건이 아니었다.
다음 7편에서는 옛날 종이는 왜 귀했고, 제지 공방에서는 헌 천과 식물 섬유가 어떻게 한 장의 종이로 변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FAQ
Q1. 중세의 책은 모두 수도사가 직접 만들었나요?
아닙니다. 수도원은 중세 책의 보존과 제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모든 필사본이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특히 중세 후기에 도시와 대학이 성장하면서 전문 필사자, 장식가, 서적상 등 수도원 밖의 제작자들도 활발하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Q2. 필사자가 글씨를 잘못 쓰면 책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나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양피지의 잘못 쓴 부분을 긁어 수정하거나 빠진 내용을 여백에 추가하는 등 여러 수정 방법이 사용됐습니다. 실제 중세 필사본에는 이런 수정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Q3. 구텐베르크가 세계 최초로 인쇄술을 발명한 사람인가요?
그렇게 표현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유럽보다 앞서 목판인쇄가 발전했고, 한반도에서는 금속활자도 사용됐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중요성은 15세기 유럽에서 금속활자와 인쇄기 등을 결합한 인쇄 체계가 확산되며 유럽의 책 생산과 유통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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