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왜 두루마리에서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었을까? 코덱스의 등장

 



책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표지가 있고, 한쪽이 묶여 있으며, 필요한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 읽는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너무 익숙한 형태라 책은 원래부터 이렇게 생겼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대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 기록물 가운데 하나는 두루마리(scroll)였다.

파피루스 같은 기록 재료를 길게 이어 붙이고 한쪽에서부터 돌돌 말아 보관했다. 글을 읽을 때는 필요한 만큼 펼치고 읽은 부분을 다시 감아가며 내용을 확인했다.

오늘날에도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를 볼 수 있지만 일상적인 책의 주류 형태는 아니다.

어느 시점부터 여러 장을 겹치고 한쪽을 묶어 페이지를 넘기는 새로운 형태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코덱스(codex)라고 부른다.

코덱스의 등장은 단순한 디자인 변화가 아니었다.

책의 형태가 달라지자 사람들이 글을 보관하고 읽고 원하는 부분을 찾아가는 방식도 함께 달라졌다.

두루마리는 오랫동안 중요한 기록 형태였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가 중요한 기록 형태로 사용됐다.

파피루스 시트를 여러 장 이어 붙이면 긴 기록면을 만들 수 있다.

그 위에 글을 적고 돌돌 말아두면 긴 글도 비교적 작은 공간에 보관할 수 있었다.

점토판 여러 개를 보관하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가볍다는 장점도 있었다.

두루마리는 글을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독자는 두루마리를 조금씩 펼치면서 내용을 따라간다.

보통 한쪽을 풀면서 읽고 이미 읽은 부분을 반대쪽으로 감아가는 방식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긴 두루마리에서는 글을 여러 개의 세로 단으로 나누어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독서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책에 익숙한 입장에서 두루마리를 사용한다고 상상해보면 불편한 점도 발견할 수 있다.

책의 중간 부분에 있는 특정 문장을 확인하고 싶다고 해보자.

페이지 번호를 보고 바로 펼칠 수 없다.

두루마리를 풀고 감으면서 원하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번갈아 비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번거롭다.

두루마리는 충분히 실용적인 기록 형태였지만 정보를 빠르게 찾아 이동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여러 장을 묶자 완전히 다른 책이 만들어졌다

코덱스의 기본 아이디어는 오늘날 책과 상당히 비슷하다.

기록 재료를 일정한 크기로 만들고 접은 다음 여러 묶음을 겹쳐 한쪽을 연결한다.

그러면 긴 기록면을 계속 펼칠 필요 없이 한 장씩 넘기며 읽을 수 있다.

초기 코덱스에는 파피루스도 사용됐지만 양피지는 이러한 구조에 특히 잘 어울리는 재료였다.

양피지는 비교적 튼튼하고 양면에 글을 기록할 수 있었다.

적절한 크기로 잘라 접으면 여러 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

지난 4편에서 양피지와 책의 형태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덱스라는 형태가 하루아침에 발명되어 모든 두루마리를 대체한 것은 아니다.

로마 시대에도 두루마리와 코덱스는 함께 사용됐다.

초기의 코덱스는 메모나 일상적인 기록 등에 사용되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긴 문헌을 담는 형태로 발전했다.

즉 어느 날 사람들이 회의를 열어 “오늘부터 두루마리를 없애고 책을 사용하자”고 결정한 것이 아니다.

사용 경험과 기록문화가 변하면서 코덱스가 점차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초기 기독교와 코덱스의 관계도 중요했다

코덱스의 확산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초기 기독교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종교 문헌을 기록하는 데 코덱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제시되어 왔으며 하나의 이유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코덱스는 여러 문헌을 하나의 책에 묶거나 특정 구절을 찾아가는 데 유용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 문헌을 읽고 서로 다른 부분을 비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장점이 있었다.

또 기존의 두루마리 문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기록 형식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과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논의된다.

중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코덱스 사용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이다.

기독교가 로마 세계에서 확대되면서 코덱스 형태 역시 점점 익숙한 기록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기독교가 코덱스를 발명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코덱스 형태 자체는 이미 존재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기존에 존재하던 코덱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준 집단 가운데 하나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코덱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페이지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앞부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원래 읽던 곳으로 쉽게 이동한다.

손가락으로 한 부분을 잡아두고 다른 페이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목차나 페이지 번호가 있다면 원하는 위치를 더 빠르게 찾을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두루마리보다 코덱스 구조에서 훨씬 편리하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페이지 번호와 정교한 색인 체계가 코덱스 등장 순간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의 내부를 체계적으로 나누고 특정 정보를 빠르게 찾도록 돕는 장치들은 긴 시간에 걸쳐 발전했다.

하지만 코덱스는 그 기반이 되는 구조를 제공했다.

책장을 앞뒤로 넘길 수 있고 서로 떨어진 부분을 비교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공부나 연구처럼 책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는 것보다 필요한 부분을 반복해서 찾아보는 활동에서 이런 특징은 중요하다.

책의 형태가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까지 바꾼 셈이다.

앞뒤에 쓸 수 있으니 기록 공간도 활용하기 좋았다

코덱스의 또 다른 장점은 기록면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도 상황에 따라 뒷면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인 제작과 사용 방식에서는 한쪽 면이 주로 글을 쓰기에 적합했다.

반면 양피지는 양면에 기록하기 좋았다.

양피지를 접어 코덱스로 만들면 한 장의 앞과 뒤가 자연스럽게 연속된 페이지가 된다.

책을 펼쳤을 때 양쪽에 글이 나타나는 오늘날의 책과 비슷한 모습이다.

또 두루마리처럼 전체 길이를 계속 늘리지 않아도 된다.

여러 묶음을 차례로 연결하면 상당한 양의 글을 하나의 물리적인 책에 담을 수 있다.

여러 작품이나 문서를 한 권에 모으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은 많은 기록을 정리하고 보관해야 하는 환경에서 유용했다.

특히 수도원과 교회, 학문기관 등에서 책을 만들고 보관하는 문화가 성장하면서 코덱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책의 모양이 바뀌자 보관 방식도 달라졌다

두루마리는 돌돌 만 상태로 보관한다.

고대의 도서관이나 문서 보관 공간에서는 두루마리를 상자나 선반 등에 보관하고 필요한 기록을 찾아 꺼내는 방식이 사용됐다.

코덱스는 형태부터 다르다.

책의 앞뒤에 표지를 붙여 내부 페이지를 보호할 수 있고, 여러 권을 함께 놓아 정리할 수도 있다.

책등 부분을 이용해 책을 구분하는 문화 역시 이후 발전한다.

오늘날 도서관에 가면 책이 선반에 세워져 있고 책등의 제목과 분류기호를 확인해 필요한 책을 찾는다.

이 모습 역시 책이라는 물건의 형태와 연결돼 있다.

물론 중세의 책을 현대 도서관처럼 처음부터 책등이 보이게 세워 보관한 것은 아니다.

책을 눕혀 두거나 다른 방식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세의 귀중한 책을 책상이나 독서대에 사슬로 연결해 두는 체인드 라이브러리(chained library)도 후대에 등장했다.

중요한 점은 코덱스가 하나의 단단한 물건처럼 다루기 쉬운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읽는 방법뿐 아니라 책을 소유하고 이동하고 분류하고 보관하는 방법도 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세의 책은 여전히 귀한 물건이었다

코덱스가 편리하다고 해서 책이 갑자기 흔해진 것은 아니다.

중세의 필사본 한 권을 만들려면 상당한 작업이 필요했다.

먼저 양피지나 종이 같은 기록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페이지의 크기를 맞추고 글씨가 일정하게 들어가도록 줄을 잡는다.

그다음 사람이 직접 원문을 보면서 글을 옮겨 적는다.

복사 버튼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의 글을 사람이 직접 써야 했다.

화려한 책이라면 장식 작업도 더해졌다.

중요한 첫 글자를 크게 꾸미고 색을 칠하거나 그림을 넣었다.

금박을 사용한 필사본도 있었다.

완성된 페이지 묶음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꿰맨 뒤 표지를 붙이는 제본 작업도 필요했다.

결국 책 한 권은 여러 종류의 노동이 모인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코덱스가 두루마리보다 편리한 형태였다고 해도 책 자체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곧바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필사 과정에서는 실수도 기록의 일부가 됐다

사람이 책을 직접 베껴 쓴다는 것은 흥미로운 문제를 만든다.

아무리 숙련된 필사자라도 실수할 수 있다.

비슷한 단어를 잘못 읽거나 한 줄을 건너뛸 수도 있고 같은 문장을 두 번 적을 수도 있다.

원본에 이미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가 다음 사본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반대로 필사자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표현을 수정하거나 설명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본 사이에 조금씩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연구자들이 오래된 문헌의 여러 사본을 비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다.

어떤 표현이 더 오래된 형태인지, 어느 사본에서 변화가 생겼는지를 비교하면서 원래의 내용에 가까운 문장을 추정한다.

즉 인쇄술 이전의 책은 동일한 파일을 그대로 복제한 물건과 달랐다.

한 권 한 권을 사람이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각각의 책이 조금씩 다른 흔적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다음 단계의 기록문화가 왜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코덱스가 오늘날 책의 기본 구조를 만들었다

스마트폰과 전자책이 널리 사용되는 지금도 종이책의 기본 구조를 보면 코덱스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여러 장의 기록면이 한쪽에 묶여 있다.

표지가 있고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긴다.

책을 펼치면 양쪽 페이지를 볼 수 있고 읽던 위치에서 앞뒤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약 2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재료와 제작 기술은 크게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사용 방식은 이어진 것이다.

이 점에서 코덱스는 기록 매체 역사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형태가 편리해진 것과 책을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중세에는 여전히 한 권의 책을 사람이 직접 옮겨 적어야 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 책 한 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누가 글씨를 썼고, 누가 그림을 그렸으며, 한 권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작업을 거쳤을까?

마무리

책은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파피루스를 길게 이어 만든 두루마리가 중요한 기록 형태였고, 사람들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감아가며 글을 읽었다.

이후 여러 장의 기록 재료를 묶은 코덱스가 확산되면서 책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원하는 부분으로 이동하기 쉬워졌고 앞부분과 뒷부분을 비교하기도 편해졌다. 양면을 활용해 많은 내용을 하나의 책에 담을 수도 있었다.

양피지와 코덱스의 조합은 특히 중세의 책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책 한 권을 만들려면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직접 옮겨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이가 있어도, 편리한 책의 형태가 있어도 복제 방법이 느리다면 책을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

다음 6편에서는 인쇄술이 널리 사용되기 전 중세 사람들이 필사본 한 권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필사자와 장식가, 제본 작업까지 이어지는 책 제작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FAQ

Q1. 코덱스는 무엇인가요?

여러 장의 기록 재료를 겹치거나 접어 한쪽을 묶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는 형태의 기록물입니다. 오늘날 일반적인 책의 기본 구조와 비슷합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용됐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두루마리를 대신하는 주요 책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Q2. 기독교인들이 코덱스를 처음 발명했나요?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코덱스 형태는 초기 기독교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다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종교 문헌을 기록하는 데 코덱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코덱스 확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Q3. 코덱스가 등장하자 두루마리는 바로 사라졌나요?

아닙니다. 두루마리와 코덱스는 상당 기간 함께 사용됐습니다. 기록 매체의 변화는 보통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는 순간 기존 형태가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 용도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오랜 기간 공존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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