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계식 시계에는 한 가지 익숙한 행동이 필요했다.
바로 태엽을 감는 일이다.
태엽에 저장된 에너지가 톱니바퀴를 움직이고, 탈진기와 진자 또는 밸런스 휠 같은 장치가 움직임을 조절하면서 시간을 표시한다.
태엽이 충분히 풀리면 다시 감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벽시계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뒤쪽에 작은 건전지 하나를 넣으면 몇 달이고 작동한다. 매일 태엽을 감을 필요도 없고 커다란 진자가 움직이지 않아도 시간을 꽤 정확하게 표시한다.
손목시계도 마찬가지다.
기계식 무브먼트가 들어 있는 제품도 있지만 건전지로 작동하는 쿼츠시계 역시 매우 흔하다.
이 작은 시계 안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시간의 기준을 만들고 있을까?
그 중심에는 의외의 물질이 있다.
바로 수정, 즉 쿼츠(quartz)다.
전기는 먼저 시계를 움직이는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전기를 이용하는 시계의 역사는 쿼츠시계보다 먼저 시작됐다.
19세기에는 전기와 전자석을 시계 장치에 활용하려는 여러 실험과 개발이 이루어졌다.
초기 전기시계라고 해서 오늘날의 디지털 전자시계와 같은 구조였던 것은 아니다.
기존 기계식 시계의 일부 기능에 전기를 결합한 형태가 많았다.
예를 들어 전자석을 이용해 진자의 움직임을 유지하거나 여러 시계를 전기적인 신호로 연결하는 방식이 개발됐다.
이 방식은 특히 여러 장소의 시계를 같은 시간에 맞춰야 할 때 유용했다.
하나의 기준이 되는 시계가 전기 신호를 보내고 다른 시계들이 그 신호를 받아 움직인다면 건물 곳곳의 시계를 하나의 시간에 맞출 수 있다.
학교나 공장, 역, 공공기관처럼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에서는 상당히 실용적인 방식이었다.
여기에서 시계의 역할이 다시 한번 달라진다.
과거의 시계는 각각 독립적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였다.
전기적인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여러 시계를 하나의 시간 기준에 동기화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기를 동력이나 신호 전달에 이용한다고 해서 시간 측정의 기준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변화는 수정의 진동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수정에 전기를 가하면 일정하게 진동한다
쿼츠시계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수정이라는 물질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수정은 이산화규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결정이다.
수정 결정에는 압전 효과(piezoelectric effect)라는 특성이 있다.
수정에 기계적인 힘을 가하면 전기적인 전압이 나타날 수 있고, 반대로 적절한 전압을 가하면 결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형된다.
여기에 전기적인 회로를 적절히 구성하면 수정 결정이 매우 일정한 주파수로 진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시계 제작자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 규칙성이다.
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현상이 필요하다.
진자시계에서는 진자가 좌우로 흔들리는 주기를 이용했다.
기계식 손목시계에서는 밸런스 휠이 반복해서 진동한다.
쿼츠시계에서는 그 역할을 수정 진동자가 담당한다.
즉 시간 측정 도구의 핵심 질문은 시대가 달라져도 비슷하다.
“무엇을 일정하게 반복시킬 것인가?”
해시계는 태양의 움직임을 이용했고 물시계는 물의 흐름을 이용했다.
진자시계는 진자의 왕복 운동을 사용했고, 쿼츠시계는 수정의 빠르고 규칙적인 진동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손목시계의 수정은 왜 32,768번 진동할까?
일반적인 쿼츠 손목시계의 원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숫자가 등장한다.
32,768Hz다.
많은 쿼츠시계에서 사용되는 수정 진동자는 1초 동안 32,768회의 진동을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다.
왜 이렇게 애매해 보이는 숫자를 사용할까?
32,768은 2의 15제곱이다.
전자회로에서는 신호를 절반씩 나누는 작업을 반복하기 편하다.
32,768번의 진동을 절반으로 나누고, 다시 절반으로 나누는 과정을 15번 반복하면 1Hz, 즉 1초에 한 번의 신호를 얻을 수 있다.
이 신호를 이용하면 시곗바늘을 일정하게 움직이거나 디지털 화면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건전지는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아날로그 쿼츠시계의 내부를 보면 기계식 시계와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
기계식 시계에서는 태엽과 탈진기, 밸런스 휠 등 정밀한 기계부품이 핵심이다.
쿼츠시계에서는 배터리, 수정 진동자, 전자회로, 모터와 기어 등이 함께 시간을 표시한다.
겉으로는 똑같이 시침과 분침이 돌아가더라도 내부에서 시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전혀 다른 셈이다.
최초의 쿼츠시계는 손목에 찰 만큼 작지 않았다
오늘날 쿼츠시계는 매우 작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최초의 쿼츠시계부터 손목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던 것은 아니다.
1927년 미국 벨 연구소의 워런 매리슨(Warren Marrison)과 J. W. 호턴(J. W. Horton)은 수정 진동자를 이용한 초기 쿼츠시계를 개발했다.
초기의 장치는 오늘날 손목시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전자 기술 역시 지금처럼 소형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쿼츠시계는 시간 측정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전자부품과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치를 점점 작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쿼츠 기술을 손목시계 크기로 줄이려는 경쟁도 본격화됐다.
그리고 1969년 시계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제품이 등장한다.
일본 세이코가 출시한 아스트론(Astron)이다.
세이코 아스트론은 상용화된 초기 쿼츠 손목시계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평가된다.
당시에는 매우 비싼 첨단 제품이었지만 이후 기술 발전과 대량생산을 통해 쿼츠시계의 가격은 크게 낮아졌다.
쿼츠시계는 왜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하기 쉬울까?
기계식 시계에는 수많은 움직이는 부품이 들어간다.
태엽의 힘과 톱니바퀴의 마찰, 밸런스 휠의 움직임, 시계의 자세와 온도 등 여러 조건이 정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밀한 기계식 시계는 이런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매우 세밀하게 제작하고 조정한다.
반면 쿼츠시계에서는 수정 진동자가 매우 높은 빈도로 규칙적으로 진동한다.
전자회로는 그 진동을 계산해 시간 신호로 바꾼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쿼츠시계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와 낮은 비용으로도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확보하기 쉬웠다.
또 사용자의 관리 부담도 줄었다.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는 태엽을 직접 감거나 자동으로 감기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쿼츠시계는 배터리가 전력을 공급한다.
배터리가 유지되는 동안 사용자가 매일 태엽을 감을 필요가 없다.
정확하고 관리가 편하며 대량생산에도 유리하다.
이 조합은 시계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쿼츠 혁명’은 시계 산업의 판도를 흔들었다
1970년대 이후 쿼츠 손목시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 기계식 시계 산업은 큰 변화를 겪었다.
특히 오랫동안 정밀 기계식 시계 제작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스위스 시계 산업은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흔히 이 시기를 쿼츠 위기(Quartz Crisis) 또는 관점에 따라 쿼츠 혁명이라고 부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쿼츠시계의 장점이 분명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도 편했다.
시계가 반드시 복잡하고 값비싼 기계장치여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기계식 시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기계식 시계는 다른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작은 톱니바퀴와 태엽이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 정교한 수작업, 오랜 시계 제작 전통 등이 제품의 중요한 가치로 부각됐다.
이것은 시간 도구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모습이다.
새로운 기술이 이전 기술보다 편리하다고 해서 기존 물건이 반드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능적 역할이 줄어들면 기존 도구가 취향이나 문화, 디자인, 기술적 전통을 보여주는 물건으로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숫자로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가 등장하다
쿼츠 기술과 전자 기술의 발전은 시계를 움직이는 방식만 바꾼 것이 아니다.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통적인 시계는 원형 문자판 위에서 시침과 분침이 움직인다.
사람은 바늘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읽는다.
하지만 전자회로가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면 반드시 바늘을 움직여야 할까?
계산된 시간을 숫자로 바로 표시할 수도 있다.
이 생각에서 전자식 디지털시계가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10시 35분”을 바늘의 각도로 해석할 필요 없이 화면에 10:35라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한 표시 방식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시간을 읽는 경험에도 변화를 만들었다.
아날로그 시계에서는 10분이라는 시간이 원형 문자판의 일정한 공간으로 보인다.
디지털시계에서는 시간이 숫자가 바뀌는 형태로 나타난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에 이어 시간을 읽는 방식까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무리
전기와 쿼츠 기술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기계식 시계의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기시계는 전자석과 전기 신호를 이용해 시계를 움직이거나 여러 시계를 하나의 기준에 맞추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쿼츠시계는 수정 결정의 규칙적인 진동을 시간 측정의 기준으로 이용했다.
일반적인 쿼츠 손목시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32,768Hz의 진동을 전자회로가 반복해서 나누면 1초를 나타내는 신호를 얻을 수 있다.
이 방식은 높은 정확도와 편리한 관리, 소형화와 대량생산이라는 장점을 가져왔다.
한때 거대한 시계탑 안에 들어가던 시간 측정 장치가 이제 손목 위의 작은 배터리와 수정 결정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계가 시간을 전자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굳이 시곗바늘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 11편에서는 숫자로 시간을 직접 보여주는 디지털시계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시간을 읽는 방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려 한다.
FAQ
Q1. 쿼츠시계 안에는 정말 수정이 들어 있나요?
네. 쿼츠시계에는 수정 결정의 특성을 이용한 작은 수정 진동자가 사용됩니다. 전자회로와 결합된 수정 진동자의 규칙적인 진동을 기준으로 시간을 계산합니다.
Q2. 쿼츠시계에서 32,768Hz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2,768은 2의 15제곱입니다. 전자회로에서 진동 신호를 절반씩 15차례 나누면 1Hz, 즉 1초에 한 번의 신호를 만들 수 있어 손목시계의 시간 기준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합니다.
Q3. 쿼츠시계가 등장하면서 기계식 시계는 사라졌나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시간을 편리하게 확인한다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쿼츠시계가 큰 장점을 가졌지만, 기계식 시계는 정교한 구조와 제작 기술, 디자인과 전통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지금도 계속 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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