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오전 9시라면 부산에서도 오전 9시다.
오늘날에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스마트폰이나 손목시계를 들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더라도 국내에서는 같은 시간을 사용한다. 기차가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한다고 적혀 있다면 승객과 기관사, 출발역과 도착역 모두 같은 시간 기준을 전제로 움직인다.
그런데 과거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지역마다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던 시대에는 동쪽과 서쪽의 도시가 서로 조금씩 다른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철도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이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지자 서로 다른 지역의 시간 차이가 실제 생활 속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철도는 사람과 물건만 빠르게 이동시킨 것이 아니라 시간의 기준까지 바꾸는 계기가 됐다.
태양을 기준으로 하면 도시마다 정오가 달라진다
기계식 시계가 널리 보급되기 전 사람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 기준은 태양이었다.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고 하늘을 이동한 뒤 저녁에 지는 주기는 하루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기준이 된다.
특히 태양이 그 지역의 자오선을 지나는 때를 기준으로 정오를 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구가 둥글고 자전한다는 점이다.
경도가 다른 두 장소에서는 태양이 자오선을 통과하는 순간도 달라진다.
따라서 각 지역이 자신의 태양 위치를 기준으로 시계를 맞춘다면 옆 도시와 시간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흔히 지역 태양시(local solar time)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오늘날의 시간 감각으로 보면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로 걸어서 이동하거나 말과 마차를 이용하던 시대에는 몇 분의 차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도시까지 가는 데 몇 시간 또는 며칠이 걸리는 상황에서 두 도시의 시계가 몇 분 다르다는 사실은 일상생활을 크게 흔들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의 시간을 사용하면 됐다.
문제는 이동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시작됐다.
철도는 지역시간의 차이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19세기에 철도망이 확장되자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도시 사이를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열차는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A도시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해 B도시로 향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A도시와 B도시가 각자 다른 지역시간을 사용한다면 시간표를 읽는 것부터 복잡해진다.
한두 도시만 연결한다면 그럭저럭 관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도 노선이 수많은 도시와 역을 연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마다 조금씩 다른 시간을 사용한다면 열차의 출발과 도착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 매우 번거로워진다.
승객도 자신이 가진 시계를 어느 지역의 시간에 맞춰야 하는지 신경 써야 한다.
철도 운영자 입장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열차의 운행 순서를 정하고 직원들이 같은 시간표를 이해하려면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철도는 결국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각 도시의 시간을 그대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지역이 하나의 시간을 함께 사용할 것인가?”
영국 철도는 런던의 시간을 공통 기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표준시간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 가운데 하나가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철도망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여러 지역의 시간을 하나의 기준으로 맞출 필요성이 커졌다.
이때 기준으로 활용된 것이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 시간이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이미 천문 관측과 정확한 시간 측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세기 영국 철도회사들은 점차 그리니치 시간을 철도 운영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흔히 Railway Time, 즉 철도시간이라고 불리는 변화다.
1840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Great Western Railway)가 그리니치 시간을 채택한 사례가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이후 다른 철도회사들도 같은 흐름을 따랐다.
전신 기술 역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확한 시간을 멀리 떨어진 장소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여러 역의 시계를 하나의 기준에 맞추기가 이전보다 쉬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나타난다.
지역 주민이 사용하는 시간과 철도가 사용하는 시간이 다를 수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한동안 지역시간과 철도시간이 함께 존재했다.
결국 철도가 사용하는 공통된 시간이 편리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표준화된 시간은 일상생활에도 점차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미에서는 시간 문제가 훨씬 복잡했다
철도시간의 필요성은 영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넓은 대륙을 철도가 연결한 북미에서는 문제가 더욱 복잡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지역에서 각 도시가 자체적인 지역시간을 사용하면 철도회사가 관리해야 하는 시간 기준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철도 노선이 길어지고 회사 간 연결이 많아질수록 통일된 체계가 필요했다.
결국 북미 철도회사들은 1883년 표준시간대 체계를 도입하는 중요한 변화를 시행했다.
1883년 11월 18일, 미국과 캐나다의 철도는 여러 표준 시간대를 기준으로 운행 시간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 날은 미국의 시간 역사에서 흔히 ‘Day of Two Noons’라는 표현과 함께 소개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기존 지역시간의 정오와 새 표준시간의 정오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실제로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시간을 표시하는 기준을 바꿨다는 점이다.
태양은 이전과 똑같이 움직였다.
바뀐 것은 사회가 시계를 맞추는 약속이었다.
표준시는 자연의 시간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약속이다
표준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간’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루가 생기는 원인은 지구의 자전이라는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정확히 몇 시인가”를 결정하려면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지역마다 태양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철도와 전신이 멀리 떨어진 지역을 빠르게 연결하면서 지역별 시간보다 넓은 범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일정한 지역을 하나의 시간 기준으로 묶는 방식이 발전했다.
표준시는 시간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여러 지역 사람들이 “우리의 시계를 이 기준에 맞추자”고 약속한 결과에 가깝다.
이렇게 생각하면 집 안의 시계나 손목시계가 정확하다는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시계 자체가 빠르거나 느려지지 않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둘째는 그 시계가 사회에서 사용하는 올바른 시간 기준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밀한 시계라도 잘못된 시간에 맞춰놓으면 사회생활에서는 정확한 시계라고 하기 어렵다.
철도역의 시계가 중요했던 이유
옛 철도역 사진을 보면 눈에 잘 띄는 곳에 커다란 시계가 설치된 경우가 많다.
역에서 시계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철도는 시간표에 따라 운영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승객은 출발 시각을 알아야 하고 역무원과 열차 승무원도 같은 시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개인이 휴대용 시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역의 공식 시계와 맞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철도와 정확한 시계는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철도 종사자의 주머니시계가 높은 정확도를 요구받았던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공통된 시간표가 있어도 각자의 시계가 크게 다르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정확한 시계를 가지고 있어도 지역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사용하면 복잡하다.
따라서 근대적인 시간 체계가 작동하려면 표준화된 시간과 정확한 시계가 함께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점점 개인의 감각보다 사회적인 약속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모든 지역을 하나의 시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전 세계가 같은 시각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문제가 있다.
지구의 한쪽이 낮일 때 반대쪽은 밤이다.
런던에서 낮 12시일 때 지구 반대편에서도 똑같은 생활상의 ‘낮 12시’를 사용한다면 일상적인 시간 표현과 태양의 움직임 사이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넓은 지역에서는 시간을 일정한 구역으로 나누는 방식이 필요해졌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대(time zone)로 이어진다.
한국에서 오전 9시일 때 영국이나 미국의 시계가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것도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를 시간대로 나누려면 또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어디를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시간을 계산할 것인가?
세계적인 교통과 통신이 확대될수록 국가와 지역을 넘어 사용할 기준선의 필요성도 커졌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논의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마무리
도시마다 시간이 조금씩 달랐던 시대가 있었다.
각 지역에서 태양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람의 이동 속도가 느렸을 때는 이러한 차이가 큰 불편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철도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수많은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고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열차를 운행하려면 지역마다 다른 시간보다 공통된 기준이 훨씬 편리했다.
영국 철도에서 그리니치 시간을 사용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북미 철도에서도 여러 지역을 묶는 표준시간 체계가 도입되면서 시간은 점차 지역적인 기준에서 넓은 사회가 공유하는 기준으로 변했다.
이 변화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실 하나를 다시 보게 만든다.
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같은 기준을 사용하기로 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철도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배와 철도가 국경을 넘고 국제 통신이 확대되면서 이제 세계적인 시간 기준이 필요해졌다.
다음 9편에서는 세계가 왜 여러 시간대로 나뉘게 되었는지, 그리니치 자오선이 국제적인 기준선으로 선택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FAQ
Q1. 과거에는 정말 옆 도시와 시간이 달랐나요?
네. 지역마다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면 경도가 다른 도시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동 속도가 느렸던 시대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철도와 전신이 발달하면서 공통된 시간 기준의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Q2. 철도가 표준시를 처음 발명한 건가요?
표준시간이라는 개념을 철도 하나가 단독으로 발명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19세기 철도망의 확대는 여러 도시가 공통된 시간을 사용할 실질적인 필요성을 크게 높였고, 표준시간이 확산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Q3. 그리니치 시간은 왜 철도와 연결됐나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천문 관측과 시간 측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철도망이 확대되자 여러 철도회사가 그리니치의 시간을 공통된 운행 기준으로 채택하면서 지역마다 달랐던 시간을 통일하는 흐름이 확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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