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도시의 시계는 건물의 일부에 가까웠다.
높은 탑 안에 커다란 톱니바퀴와 추가 설치되어 있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종을 울려 주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렸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기계식 시계는 전혀 다르다.
벽에 걸 수도 있고 책상 위에 놓을 수도 있다. 더 작아지면 주머니에 넣거나 손목에 찰 수도 있다.
어떻게 건물에 설치하던 거대한 장치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이해하려면 시계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동력과 그 힘을 일정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시간 조절 장치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단순히 톱니바퀴를 작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다.
추와 태엽, 탈진기와 진자 같은 여러 기술이 결합되면서 시계는 조금씩 탑을 벗어나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들어왔다.
시계탑의 커다란 추는 무엇을 했을까?
기계식 시계가 계속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현대 전자시계라면 배터리나 전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중세의 기계식 시계에는 그런 동력원이 없었다.
초기의 대형 기계식 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추(weight)였다.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무거운 추가 중력에 의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연결된 줄이나 장치를 움직인다. 그 힘이 톱니바퀴로 전달되면서 시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추의 힘을 톱니바퀴에 그대로 전달하면 바퀴가 빠르게 돌아가 버린다. 시계는 단순히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 기계다.
그래서 앞선 글에서 살펴본 탈진기가 필요했다.
탈진기는 톱니바퀴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막고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움직이도록 조절한다.
추가 시계를 움직이는 힘을 제공한다면, 탈진기는 그 힘이 사용되는 속도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만 추를 이용한 시계에는 공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추가 아래로 내려갈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계탑이나 높은 건물에서는 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작은 탁상시계나 휴대용 시계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기계식 시계를 작게 만들려면 추를 대신할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
태엽은 시계를 작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태엽이었다.
태엽은 금속으로 만든 탄성 있는 스프링을 감아 에너지를 저장하고, 다시 풀리려는 힘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쉽게 생각하면 장난감 자동차의 태엽과 비슷하다.
태엽을 감으면 내부에 에너지가 저장되고, 손을 놓으면 태엽이 풀리면서 장치를 움직인다.
이 방식을 시계에 적용하면 높은 곳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놓지 않아도 된다.
동력 장치를 작은 공간 안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15세기 무렵부터 태엽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 휴대 가능한 시계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그러나 태엽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
완전히 감겨 있을 때와 많이 풀렸을 때의 힘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엽이 강한 힘을 낼 때 시계가 빨라지고, 풀리면서 힘이 약해질 때 작동 상태가 달라진다면 정확한 시간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계 제작자들은 태엽의 힘을 보다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발전시켰다.
결국 시계를 작게 만드는 문제는 단순히 부품의 크기를 줄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서 동력을 저장하면서도 그 힘을 최대한 일정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야 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시계는 생활용품이자 장식품이었다
기계식 시계가 작아지면서 시계는 높은 탑에서만 볼 수 있는 장치가 아니게 됐다.
실내에 둘 수 있는 시계가 등장했다.
벽에 설치하거나 선반과 탁자 위에 놓을 수 있는 형태가 발전했고, 이후에는 가정용 시계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가정에 시계가 한 대씩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의 정교한 기계식 시계는 제작하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물건이었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시계 제작자가 수많은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해야 했다.
그래서 실내용 시계는 한동안 실용적인 시간 측정 도구인 동시에 부와 기술력을 보여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외형도 자연스럽게 화려해졌다.
나무나 금속으로 장식된 케이스를 사용하거나 문자판과 시곗바늘을 정교하게 꾸민 시계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은 시계의 역할이 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공공시계는 여러 사람이 함께 시간을 확인하는 시설이었다면 집 안의 시계는 특정 가정과 개인의 생활을 시간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시계가 생활공간 안으로 들어오자 시간을 확인하는 행동도 달라졌다.
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필요할 때 문자판을 보고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자시계는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
기계식 시계가 생활공간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정확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를 크게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진자(pendulum)였다.
진자는 줄이나 막대 끝에 무게를 달아 좌우로 흔들리게 만든 장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연구했던 진자의 성질을 바탕으로 1656년 실용적인 진자시계를 설계했고, 이듬해 관련 특허를 얻었다.
진자가 시계에 유용했던 이유는 반복되는 운동을 시간의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한 조건에서 진자가 좌우로 흔들리는 주기를 이용해 탈진기의 움직임을 조절하면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진자시계의 발전은 시계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문자판의 변화도 의미를 갖게 된다.
대략 몇 시인지만 알던 시대에서 벗어나 분 단위의 시간을 읽는 것이 점점 실용적이 됐다.
분침이 기계식 시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과정도 이러한 정확도 향상과 연결된다.
시계가 정확하지 않은데 문자판에 세밀한 눈금만 추가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기계가 시간을 안정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더 세밀한 표시도 가치가 생긴다.
진자시계는 왜 키가 큰 형태가 많았을까?
오래된 서양식 시계를 떠올리면 키가 큰 나무 상자 안에서 진자가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이 생각날 수 있다.
흔히 롱케이스 클록(longcase clock) 또는 그랜드파더 클록이라고 부르는 형태다.
이런 시계가 길쭉한 데는 장식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는 진자가 움직일 공간이 필요하고, 추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형태라면 추가 위에서 아래로 이동할 공간도 필요하다.
긴 케이스는 이러한 기계장치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시계의 외형을 살펴보면 내부 작동 원리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탑시계가 거대한 이유, 롱케이스 시계가 세로로 긴 이유, 주머니시계가 작고 납작해진 이유에는 각각 내부 기계장치의 조건이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전자제품은 내부 부품을 보지 않으면 작동 원리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옛 기계식 시계는 외형과 작동 방식의 관계가 비교적 눈에 잘 보인다.
진자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톱니바퀴와 탈진기가 이를 시곗바늘의 움직임으로 바꾼다.
시계에서 들리는 규칙적인 ‘틱톡’ 소리 역시 이런 기계적 작동과 연결되어 있다.
정확한 시계가 늘어나면서 하루를 보는 방법도 달라졌다
시계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더 좋은 물건 하나가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측정하는 정확도가 높아지고 실내에서 시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시간 감각에도 영향을 주었다.
태양의 위치를 보고 하루의 흐름을 판단할 때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인식해도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계가 몇 시 몇 분이라는 정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면 하루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약속과 업무 시간을 정하고, 일정한 시간 간격을 기준으로 활동을 조직하는 것도 쉬워진다.
물론 이런 변화가 유럽 전역에서 한순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시계의 보급 정도는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달랐고, 자연의 움직임이나 공공의 종소리를 기준으로 생활하는 방식 역시 오랫동안 함께 존재했다.
새로운 시간 측정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전 생활방식이 즉시 사라졌다고 보는 것보다는 여러 방식이 겹쳐 사용되면서 조금씩 생활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시계가 충분히 작아진 뒤에는 또 다른 욕구가 생겼다.
집에 시계가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외출할 때도 시간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마무리
기계식 시계가 시계탑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크기를 줄이는 것 이상의 기술 변화가 필요했다.
대형 시계에서는 아래로 내려가는 추가 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작은 시계에는 같은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웠다.
태엽은 작은 공간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게 했고, 기계식 시계가 소형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진자를 이용한 시계는 시간 측정의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
여기서 태엽과 진자의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기억해둘 만하다.
태엽은 주로 시계를 움직일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이고, 진자는 규칙적인 움직임을 이용해 시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기술이 쌓이면서 시계는 도시 한가운데의 거대한 공공시설에서 집 안에서 시간을 확인하는 생활도구로 변화했다.
하지만 집 안에 있는 시계는 외출하면 볼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은 시계를 더 작게 만들어 직접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음 6편에서는 주머니시계가 어떻게 등장했고, 왜 단순한 시간 확인 도구를 넘어 신분과 패션을 보여주는 물건이 되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FAQ
Q1. 태엽과 진자는 같은 역할을 하나요?
아닙니다. 태엽은 감아두었을 때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해 시계를 움직이는 동력원 역할을 합니다. 반면 진자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움직임을 이용해 시계가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도록 돕는 시간 조절 장치입니다.
Q2. 진자시계는 누가 만들었나요?
진자의 성질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비롯한 학자들이 연구했으며,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1656년 실용적인 진자시계를 설계했습니다. 따라서 진자의 발견과 진자시계의 실용화를 하나의 사건으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여러 연구와 기술 발전이 이어진 과정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Q3. 태엽이 등장하면서 바로 손목시계가 만들어졌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태엽은 추 없이도 시계를 움직일 수 있게 해 소형화와 휴대용 시계 발전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휴대용 시계는 여러 세대에 걸쳐 구조와 정확도가 개선됐으며, 주머니시계가 널리 사용된 뒤 손목시계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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