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특정 장소까지 갈 필요가 없다.
손목시계를 보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된다. 집과 사무실에도 시계가 있고 컴퓨터 화면에도 시간이 표시된다.
하지만 개인이 시계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기 어려웠던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각자 시계를 소유할 수 없다면 많은 사람에게 시간을 한꺼번에 알려줄 방법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맡은 것이 종과 공공시계였다.
중세 후반 유럽에서는 기계식 시계가 발전하면서 교회나 시청사, 탑 같은 높은 건물에 시계 장치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정해진 시각에 종을 울리면 시계의 문자판을 직접 보지 못하는 사람도 소리를 듣고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시계는 개인의 물건이 되기 전에 도시가 함께 사용하는 장치였던 셈이다.
시계탑보다 먼저 종소리가 시간을 알려줬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하기 전에도 종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호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특히 중세 유럽의 수도원과 교회에서는 하루의 일정과 종교적 활동을 구분하기 위해 정해진 때에 종을 울리는 관습이 있었다.
당시의 종소리가 모두 오늘날처럼 정확하게 “오전 9시 정각”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리가 넓은 범위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이 직접 시간 측정 장치를 보고 있지 않더라도 종이 울리면 특정한 활동을 시작하거나 멈춰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도시에서도 비슷한 장점이 있었다.
높은 탑에서 울리는 큰 종은 시장과 거리, 주변 지역까지 들릴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것이다.
이 점은 당시의 생활환경을 생각하면 꽤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시계라고 하면 숫자가 표시된 문자판부터 떠올리지만 초기 공공 기계식 시계 중에는 사람들이 시간을 읽는 문자판보다 정해진 시각에 종을 울리는 기능이 중요한 장치도 있었다.
영어에서 시계를 뜻하는 ‘clock’이라는 단어의 역사 역시 종을 뜻하는 중세 라틴어 계통의 표현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된다.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와 종을 울리는 장치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흔적이다.
13~14세기 무렵 기계식 시계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었다
물시계는 오랜 기간 유용하게 사용됐지만 물이라는 재료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점차 추나 톱니바퀴 같은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해 시간을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유럽에서는 대략 13세기 말에서 14세기 무렵 기계식 시계에 관한 기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다만 여기에서도 “누가 세계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발명했다”고 한 사람을 지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초기 기계식 시계는 여러 기술이 오랜 기간 결합하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는 탈진기(escapement)였다.
추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만들어내는 힘을 톱니바퀴에 그대로 전달하면 장치가 한꺼번에 움직여 버린다. 이것으로는 일정한 시간을 측정하기 어렵다.
탈진기는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저장된 힘을 한 번에 사용하지 않고 조금씩 나누어 시계 장치를 움직이도록 조절하는 장치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물이 일정하게 흐르도록 관리하지 않아도 기계적인 움직임을 이용해 시간을 지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물의 흐름에서 톱니바퀴의 움직임으로 시간 측정의 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공공시계에는 시곗바늘이 없기도 했다
오늘날 시계탑을 생각하면 커다란 원형 문자판과 시곗바늘이 떠오른다.
하지만 초기의 기계식 공공시계가 모두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장치가 탑 안에 설치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종을 울리는 방식이 중요했다. 외부에서 볼 수 있는 문자판이 없거나, 나중에 문자판이 추가된 경우도 있었다.
이 방식은 당시 사회에서 충분히 실용적이었다.
사람들이 시계탑 바로 앞에 모여 문자판을 바라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종의 횟수로 알려주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시간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 여러 차례 울리는 횟수를 세어 대략적인 시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 시계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자판을 갖춘 공공시계가 널리 등장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현대 시계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초기 시계에서는 시침 하나만 있는 형태도 흔했다.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읽는 것이 지금만큼 중요하지 않았고 초기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 역시 현대 시계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5분만 늦어도 지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의 시간 생활을 똑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시간 측정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사람들이 요구하는 시간의 단위도 점차 세밀해졌다.
시계탑은 도시의 공동 시계가 됐다
기계식 시계는 처음부터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값싼 생활용품이 아니었다.
제작에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고 큰 장치는 설치와 관리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초기의 대형 기계식 시계는 교회와 시청사 같은 공공건물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 한가운데 높은 탑에 시계를 설치하면 장점이 분명하다.
문자판이 있다면 멀리서도 시간을 볼 수 있고, 종을 함께 사용하면 시계가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도 시간을 들을 수 있다.
즉 시계탑 하나가 수많은 사람에게 시간을 제공한다.
상점과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 거리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사람,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같은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조금씩 개인의 감각에서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준으로 변화한다.
해가 중천에 떴으니 점심때라고 판단하는 것과 시계탑의 종이 특정 시각을 알렸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는 것은 생활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연의 변화가 생활을 이끄는 것에서 기계가 측정한 시간이 생활의 기준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했다고 곧바로 정확해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했다고 해서 현대적인 정확성이 바로 확보된 것은 아니다.
초기의 기계식 시계는 하루 동안 상당한 오차가 생길 수 있었다. 장치의 마찰과 온도, 제작 수준 등 여러 조건이 작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다른 기준을 이용해 시간을 확인하고 시계를 조정해야 했다.
태양의 위치를 관찰하는 전통적인 방법 역시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시간 측정 도구가 등장한다고 이전 도구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해시계와 물시계, 기계식 시계는 일정 기간 서로 다른 용도와 환경에서 함께 사용됐다.
이런 모습은 시간 도구의 역사에서 계속 반복된다.
기계식 손목시계가 있다고 쿼츠시계가 바로 모든 것을 대체하지 않았고, 스마트폰이 등장했다고 손목시계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도구를 무조건 없애기보다 사람들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조금씩 바꿔왔다.
시계가 정교해지자 ‘몇 분’도 중요해졌다
기계식 시계 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톱니바퀴와 탈진기의 구조가 개선되고 시계를 더욱 정확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17세기에는 진자를 이용한 시계가 등장하면서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는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다.
정확도가 높아지자 시간을 더 세밀하게 표시하는 것도 의미가 커졌다.
시침만으로 대략적인 시간을 확인하던 것에서 분침을 함께 사용하는 시계가 점차 보급됐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변화가 숨어 있다.
시계가 정교해져서 사람들이 시간을 더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사람들이 더 정확한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어 시계가 발전한 것인지 하나만 떼어 말하기 어렵다.
기술과 생활 방식이 서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도시와 상업 활동이 성장하고 사람들의 일정이 복잡해질수록 공통된 시간의 필요성이 커졌다. 동시에 정확한 시계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하루를 더욱 작은 시간 단위로 나눌 수 있게 됐다.
결국 “몇 시쯤”이라는 감각에서 “몇 시 몇 분”이라는 감각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된다.
공공의 시계에서 개인의 시계로
중세 도시의 시계탑은 많은 사람이 하나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시계를 보기 위해 항상 탑을 찾아야 하거나 종소리를 기다려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기계식 시계를 충분히 작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직접 자신의 시계를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이 변화에는 또 다른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대형 시계는 아래로 떨어지는 추를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사람이 가지고 다니는 시계에 긴 추를 매달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휴대용 시계에는 작은 공간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태엽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기계식 시계가 작아지면서 시계는 건물에 설치된 공공시설에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물건이 주머니시계다.
마무리
개인이 시계를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시대에도 도시는 시간을 공유할 방법을 찾았다.
높은 곳에서 울리는 종은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신호를 전달했고, 중세 후반 기계식 시계가 발전하면서 종은 기계가 측정한 시간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초기 공공시계는 오늘날의 시계탑처럼 화려한 문자판을 반드시 갖춘 것도 아니었다. 정해진 시각에 종을 울리는 기능 자체가 중요했다.
시간은 눈으로만 확인하는 정보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함께 듣는 정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 기계식 시계가 점점 정교해지고 작아지면서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의 종소리만 기다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계를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다.
다음 5편에서는 기계식 시계가 어떻게 거대한 탑에서 내려와 집과 개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추와 태엽은 시계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려 한다.
FAQ
Q1. 중세의 시계탑에는 처음부터 시곗바늘이 있었나요?
모두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초기 기계식 공공시계 가운데는 외부 문자판보다 정해진 시각에 종을 울리는 기능이 중심이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눈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자판을 갖춘 공공시계가 널리 발전했습니다.
Q2. 중세 기계식 시계도 지금처럼 정확했나요?
아닙니다. 초기 기계식 시계는 현대 시계와 비교하면 오차가 컸습니다. 이후 탈진기와 진자 등 시간 조절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확도가 크게 개선됐습니다. 따라서 중세 사람들이 현대인처럼 초 단위까지 정확한 시간에 맞춰 생활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Q3. 왜 높은 탑에 시계를 설치했나요?
공공시계는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장치였습니다. 높은 위치에 설치하면 문자판을 더 넓은 지역에서 볼 수 있고, 큰 종을 함께 사용하면 시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소리를 통해 시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개인용 시계가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시계탑 자체가 도시의 공동 시계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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