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이 없던 시절에는 창문에 무엇을 붙였을까?



오늘날에는 ‘창문’이라고 하면 투명한 유리부터 떠올린다.

창을 닫아도 햇빛이 들어오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으며, 비와 바람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창틀에 투명한 재료가 끼워져 있는 모습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넓고 평평한 판유리를 만들어 건물 곳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긴 창문의 역사에서 비교적 뒤에 나타난 변화다.

그렇다면 유리창을 쉽게 사용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했을까?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아예 나무 덧문으로 막기도 했고, 천이나 가죽처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얇은 종이처럼 빛을 어느 정도 통과시키는 재료를 창에 이용했다.

결국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반드시 ‘투명한 창’이 아니었다. 비와 바람을 줄이면서도 필요한 만큼 빛과 공기를 받아들일 방법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무로 창을 닫는 것이었다

창문의 기본 형태는 벽에 만들어 놓은 개구부에서 시작한다.

구멍을 그대로 열어두면 햇빛과 바람이 들어온다.

하지만 날씨가 나빠지면 문제가 생긴다. 비가 들이치고 찬바람이 들어오며 밤에는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기 쉽다.

이때 가장 단순한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단단한 덧문이었다.

나무판으로 개구부를 덮으면 외부의 바람과 비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필요할 때 열고 날씨가 나쁘거나 밤이 되면 닫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단점이 있었다.

단단한 나무판으로 창을 완전히 닫으면 빛까지 차단된다.

창을 열었을 때는 밝지만 외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고, 창을 닫으면 보호받는 대신 실내가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을 막으면서도 빛을 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문제를 해결할 다른 재료를 찾게 된다.

천과 가죽 같은 재료도 개구부를 가릴 수 있었다

유리창이 없는 곳에서는 반드시 단단한 판으로 창을 막아야 했던 것은 아니다.

건축 방식과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천이나 가죽처럼 비교적 유연한 재료도 개구부를 가리는 데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재료는 나무판보다 가볍고 필요한 크기에 맞춰 설치하기도 비교적 쉽다.

다만 현대의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바깥을 보여주면서 날씨를 차단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재료가 얼마나 두껍고 어떤 처리를 했는지에 따라 빛이 통과하는 정도와 바람을 막는 정도도 달라진다.

중요한 점은 당시의 창이 오늘날처럼 항상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한 장치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집 안을 보호하면서 필요한 시간에 빛과 공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기본적인 문제였다.

따라서 ‘무엇을 붙였는가’만큼이나 ‘필요할 때 어떻게 열고 닫았는가’가 중요했다.

단단한 덧문이든 유연한 가림막이든 개구부를 상황에 따라 열고 막을 수 있다면 창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종이가 창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유리 대신 사용된 재료 가운데 우리에게 특히 익숙한 것은 종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창호가 대표적이다.

나무로 가느다란 살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발라 창이나 문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종이는 투명한 유리와는 성질이 다르다.

바깥 풍경을 선명하게 볼 수는 없지만 얇은 종이는 햇빛을 어느 정도 통과시킬 수 있다.

이 특징 덕분에 창을 가린 상태에서도 실내가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을 줄일 수 있었다.

빛이 종이를 통과하면서 부드럽게 퍼지는 효과도 생긴다.

이것은 나무판으로 개구부를 완전히 막았을 때와 큰 차이가 있다.

단단한 덧문은 외부를 차단하는 데 유용하지만 빛도 함께 막는다. 반면 종이는 시선을 가리고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면서도 낮의 빛을 실내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종이창을 현대적인 유리창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종이는 유리와 내구성이나 방수성 등이 다르기 때문에 건축 구조와 관리 방법 역시 달랐다.

그럼에도 ‘창을 닫아도 빛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해결책이었다.

유럽에서도 유리가 아닌 반투명 재료가 사용되었다

유리창이 귀했던 시대의 해결 방법은 동아시아의 종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도 건물의 개구부를 덮기 위해 다양한 재료가 사용됐다.

얇게 가공한 동물성 막이나 천 등 빛을 어느 정도 통과시킬 수 있는 재료가 이용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재료들의 공통점은 현대의 투명한 판유리처럼 바깥 풍경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데 있지 않았다.

빛을 어느 정도 통과시키면서 외부의 바람이나 날씨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오래된 창문의 역사를 ‘유리가 없어서 대신 아무 재료나 붙였다’고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사람들은 재료마다 다른 성질을 이용했다.

나무는 단단하게 막는 데 유용하고, 일부 얇은 재료는 완전히 열린 구멍보다 외부를 차단하면서 빛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됐다.

창문은 이미 이 시기부터 외부 환경을 필요한 만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장치였던 셈이다.

유리는 창문의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유리가 창문에 중요한 재료가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창에는 서로 반대되는 요구가 있었다.

벽처럼 외부를 막아야 하지만 햇빛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투명한 유리가 특별한 장점을 가진다.

창을 닫아놓아도 빛을 통과시킬 수 있고, 동시에 열린 구멍과 달리 비와 바람을 차단하는 물리적인 장벽이 된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종이나 불투명한 덧문과 크게 다른 특징이다.

그렇다고 유리가 알려진 순간부터 모든 집의 창문이 유리로 바뀐 것은 아니다.

건축용 유리는 오랫동안 값싸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특히 크고 평평하면서 두께가 비교적 일정한 유리판을 만드는 일에는 제작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과거의 유리창을 보면 작은 유리 조각 여러 개를 창틀에 나누어 끼운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은 판을 여러 개 이어 붙이는 것이 하나의 거대한 판유리를 만드는 것보다 현실적인 방법이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유리 생산 기술이 발전하고 판유리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창문의 크기와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창문은 ‘막는 재료’에 따라 집의 모습까지 바꾸었다

창문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는 단순히 창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나무 덧문을 닫으면 실내는 어두워지기 쉽다.

종이나 다른 반투명 재료를 사용하면 외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더라도 낮의 빛을 실내로 받을 수 있다.

투명한 유리를 사용하면 창을 닫은 상태에서도 햇빛을 받고 바깥 풍경까지 바라볼 수 있다.

같은 벽의 구멍이라도 무엇으로 막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창문의 역사는 단순히 ‘유리의 발명’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각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기후, 건축 방식에 맞춰 덧문과 천, 종이, 여러 반투명 재료를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계속 해결하려 했던 문제는 비슷했다.

집 안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면서도 빛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유리창이 없던 시절의 창문은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곳에서는 단단한 덧문을 열고 닫았고, 어떤 곳에서는 얇은 재료를 이용해 개구부를 가렸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종이를 활용한 창호가 중요한 건축 요소로 발전했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가 점차 창에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창문을 닫으면 어두워진다’는 오래된 제약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유리 한 장만 있다고 오늘날과 같은 창문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비바람을 막으면서 필요할 때 창을 열려면 유리판을 붙잡아주는 틀과 움직이는 창짝이 필요하다. 다음에는 창틀이 왜 여러 칸으로 나뉘고 창짝은 어떻게 움직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창을 막는 ‘재료’에서 창을 여닫는 ‘구조’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FAQ

유리창이 없던 시대에는 모든 창문을 나무판으로 막았나요?

아니다. 시대와 지역, 건축 방식에 따라 사용한 재료가 달랐다. 나무 덧문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천이나 가죽, 종이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재료를 개구부에 활용하기도 했다.

한옥에서는 왜 창문에 종이를 사용했나요?

전통 창호에 사용된 종이는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면서도 빛을 어느 정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무로 만든 창살과 종이를 결합하면 창을 가린 상태에서도 낮의 자연광을 실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리가 생긴 뒤에는 바로 큰 유리창을 만들 수 있었나요?

그렇지 않다. 유리 자체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크고 평평하며 비교적 균일한 판유리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기술적 문제였다. 건축용 판유리가 대량생산되기 전에는 작은 유리 조각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창에 사용하는 방식도 널리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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