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서랍에는 왜 이렇게 많은 도구가 생겼을까?



주방 서랍을 열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도구가 들어 있다.

가위와 칼, 병따개, 국자, 뒤집개, 집게, 강판, 계량스푼처럼 이름과 모양이 모두 다르다. 자주 사용하는 도구가 있는가 하면 특정한 음식을 만들 때만 꺼내는 도구도 있다.

이렇게 많은 도구가 정말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활도구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주방도구가 많아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수십 가지의 주방도구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재료를 활용했고 하나의 도구를 여러 작업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리 방법이 다양해지고 새로운 재료와 제작 기술이 등장하면서 특정한 일을 더 편리하게 처리하는 전용 도구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오늘날 복잡해 보이는 주방 서랍은 어쩌면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해결해 온 작은 문제들이 차곡차곡 모여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주변에 있는 도구를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

도구의 종류가 많지 않았던 시대에는 하나의 물건을 여러 작업에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날카로운 돌은 재료를 자르고 긁는 데 사용할 수 있었고 단단한 돌은 곡물이나 다른 재료를 두드리고 으깨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나무 역시 중요한 재료였다.

평평하게 다듬으면 무언가를 올려놓는 작업면이 되고 길고 가느다란 형태로 만들면 뜨거운 음식과 손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감자 전용’, ‘마늘 전용’처럼 매우 세분화된 도구를 갖추는 것보다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가 중요했다.

칼의 역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날카로운 석기는 자르고 긁고 재료를 가공하는 여러 작업에 이용됐다. 이후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적에 맞는 다양한 날붙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하나의 도구에 모든 역할을 맡길 필요도 조금씩 줄어든 것이다.

조리법이 다양해지면서 필요한 도구도 달라졌다

주방도구의 종류가 늘어난 또 하나의 이유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굽는 것과 끓이는 것은 필요한 도구가 다르다.

물을 이용해 음식을 익히려면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솥이나 냄비가 필요하다. 반대로 넓은 가열면에서 재료를 굽고 지지거나 볶으려면 프라이팬 같은 형태가 편리하다.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칼은 재료를 자르는 데 적합하고 도마는 그 칼질을 받쳐준다. 절구는 재료를 찧거나 으깨는 데 유용하고 강판은 표면의 작은 날을 이용해 재료를 잘게 만든다.

완성된 음식을 다루는 도구도 서로 다르다.

큰 솥에서 국물을 떠낼 때는 긴 자루가 달린 국자가 편리하고, 개인이 식사를 할 때는 작은 숟가락이 적합하다.

결국 조리 과정이 세분화될수록 각 단계에서 필요한 기능도 달라졌다.

자르고, 갈고, 끓이고, 굽고, 젓고, 떠내는 일을 하나의 도구로 모두 해결하기보다 각각의 작업에 맞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전용 도구는 반복되는 작은 불편을 해결했다

주방도구 가운데에는 없어도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이 많다.

병따개가 없다고 해서 이론적으로 모든 병을 절대 열 수 없는 것은 아니고, 강판이 없더라도 칼이나 절구 등을 이용해 재료를 작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전용 도구가 만들어진 이유는 반복되는 작업을 더 편리하고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다.

병따개를 생각해 보자.

금속 왕관마개는 병을 단단하게 밀봉하는 데 유용하지만 손으로 열기 어렵다. 그래서 마개의 가장자리에 걸어 지렛대 원리로 들어 올리는 작은 도구가 만들어졌다.

이 도구는 다른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병마개 하나를 여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그럼에도 같은 형태의 병을 반복해서 열어야 한다면 전용 도구의 가치는 커진다.

강판도 비슷하다.

칼로 여러 번 다져 재료를 잘게 만들 수 있지만 작은 날이 촘촘한 강판에 문지르면 다른 방식으로 빠르게 재료를 가공할 수 있다.

주방도구가 늘어났다는 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물건을 많이 만들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반복되는 작은 불편을 발견하고 그 일을 보다 쉽게 처리할 방법을 도구의 형태로 만들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재료와 기술은 더 세분화된 도구를 만들었다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재료와 가공 기술의 변화도 주방도구의 종류를 늘렸다.

돌과 나무만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금속을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다르다.

금속을 얇게 만들고 자르고 구부리거나 작은 날과 구멍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도구의 형태도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현대에는 여기에 합성수지와 실리콘 같은 재료도 더해졌다.

재료가 다양해지면서 같은 종류의 주방도구 안에서도 여러 형태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뒤집개 하나만 보더라도 금속으로 만든 제품과 실리콘 등을 이용한 제품이 있고 사용하는 조리용기와 목적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열원도 변화했다.

장작불과 아궁이를 중심으로 하던 부엌에서 가스레인지와 전기 가열기구가 사용되는 주방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조리기구에 맞는 도구도 등장했다.

생활환경이 달라지면 도구 역시 그 환경에 맞춰 변한다.

그래서 현대의 주방 서랍에는 아주 오래된 원리를 가진 도구와 비교적 최근의 생활환경에 맞춰 만들어진 도구가 함께 들어 있다.

많은 주방도구는 사람의 손이 하던 일을 나누어 맡았다

주방도구를 하나씩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의 손만으로 하기 어렵거나 불편한 일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칼은 손으로 찢기 어려운 재료를 자른다.

도마는 칼질할 자리를 만들어준다.

냄비와 솥은 물과 음식을 담은 채 불의 열을 전달한다.

프라이팬은 재료가 뜨거운 면과 넓게 접촉하도록 해준다.

국자는 뜨거운 국물과 손 사이에 거리를 만들면서 음식을 떠낸다.

강판은 손으로 조금씩 부수기 번거로운 재료를 작은 날로 잘게 만든다.

병따개는 손가락만으로 열기 어려운 마개에 힘을 전달한다.

각각의 도구만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한곳에 모아놓으면 주방 서랍에 도구가 많아진 이유가 보인다.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마주친 문제가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활도구의 발전은 거대한 발명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뜨거워서 손으로 잡기 어렵다’, ‘너무 단단해서 잘게 만들기 힘들다’, ‘작은 숟가락으로 큰 솥의 국물을 뜨기 불편하다’ 같은 사소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도구가 생겨났다.

그리고 어떤 도구는 다른 도구가 등장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칼이 있어도 강판을 사용하고 숟가락이 있어도 국자를 사용한다. 냄비가 있어도 프라이팬이 필요한 이유 역시 각 도구가 잘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주방 서랍은 단순한 수납공간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그 안에는 자르고, 받치고, 찧고, 갈고, 뒤집고, 뜨고, 여는 일을 조금씩 편리하게 만들어온 생활도구의 변화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

처음에는 주변의 돌과 나무를 이용해 여러 작업을 해결했지만 조리법과 재료, 제작 기술이 변화하면서 도구는 점점 목적에 맞게 나뉘었다.

결국 주방도구가 많아진 역사는 사람이 더 많은 도구를 갖게 된 역사인 동시에, 하나의 복잡한 일을 여러 개의 작은 작업으로 나누어 해결해 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칼과 도마에서 냄비와 솥, 프라이팬, 숟가락과 젓가락, 포크와 국자, 강판과 병따개까지 살펴보면 평범한 주방도구 하나에도 저마다 생겨난 이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에는 주방 밖으로 시선을 넓혀 빗자루나 바구니처럼 오래전부터 집 안팎에서 사용해 온 생활도구를 살펴보면, 음식을 만드는 공간에서 집 전체의 생활도구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다.

FAQ

옛날에는 지금보다 주방도구의 종류가 적었나요?

시대와 지역, 생활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어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대에는 산업 생산과 새로운 소재, 다양한 조리기기의 발달로 특정 기능을 위한 도구를 매우 다양한 형태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하나의 도구를 여러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비슷한 기능의 주방도구가 여러 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같은 재료를 다루더라도 원하는 결과와 작업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칼로 재료를 잘게 썰 수 있지만 절구로 찧거나 강판에 갈았을 때의 결과는 서로 다르다. 각 도구가 힘을 전달하는 방식과 적합한 작업이 다르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도구도 함께 사용된다.

새로운 주방도구가 나오면 오래된 도구는 사라지나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새로운 도구가 기존 작업을 더 편리하게 만들더라도 이전 도구만의 장점이나 적합한 용도가 남아 있으면 함께 사용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칼과 절구, 강판처럼 서로 다른 시대에 발전한 원리를 가진 도구들이 한 주방에서 함께 사용되는 것이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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