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에 든 음료를 마실 때 병따개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병따개의 끝부분을 금속 마개 아래에 걸고 손잡이를 들어 올리면 단단하게 닫혀 있던 마개가 빠진다. 익숙한 사람에게는 몇 초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동작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병따개는 병보다 먼저 필요했던 도구가 아니다. 병을 어떤 방식으로 막느냐가 달라지면서 그 마개를 열기 위한 전용 도구가 필요해졌다.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금속 병뚜껑이 없던 시대에는 병을 막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따라서 병을 여는 방법 역시 지금과 같을 이유가 없었다.
병따개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작은 주방도구 하나가 사실은 유리병과 마개, 음료의 보관 방법이 함께 변화하면서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병따개가 없었던 이유는 병마개의 모습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병에 액체를 담는다면 입구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반하는 동안 내용물이 흘러나올 수 있고 외부의 이물질이 들어가기 쉽다.
하지만 오래된 병에는 오늘날 탄산음료 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금속 왕관마개가 처음부터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병의 입구를 막는 데에는 시대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사용됐다.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코르크 마개다.
코르크는 압축되는 성질을 이용해 병목 안쪽에 밀어 넣어 입구를 막을 수 있다. 와인병에서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런 병은 금속 마개의 가장자리를 들어 올리는 현대적인 병따개로 여는 구조가 아니다.
병 안쪽에 들어가 있는 마개를 밖으로 빼내야 한다.
즉 병마개의 구조가 다르면 필요한 개봉 방법도 달라진다.
병따개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이 무조건 불편하게 병을 열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사용하던 마개에 맞는 방법으로 병을 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코르크 마개에는 ‘뽑는 도구’가 필요했다
코르크를 병목 안쪽에 단단하게 넣으면 내용물을 보관하는 데 유용하지만 다시 꺼낼 때는 문제가 생긴다.
손가락으로 잡을 부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르크 마개를 쉽게 빼내기 위한 별도의 도구가 발전했다.
오늘날의 코르크스크루가 대표적이다.
나선형 부분을 코르크에 돌려 넣은 다음 잡아당기면 코르크를 병 밖으로 빼낼 수 있다. 형태에 따라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보다 적은 힘으로 마개를 뽑도록 만든 제품도 있다.
여기에서 병을 여는 도구가 마개의 구조를 따라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코르크처럼 병 안쪽에 끼워 넣는 마개는 ‘뽑아내는 동작’이 필요하다.
반면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금속 왕관마개는 병 입구의 바깥쪽을 단단히 감싸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열어야 한다.
같은 병을 여는 행동이라도 마개가 어떻게 닫혀 있느냐에 따라 필요한 도구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이다.
탄산음료의 보급은 병마개에도 새로운 조건을 만들었다
병에 물이나 음료를 담는 것과 탄산이 들어 있는 음료를 보관하는 것은 조건이 다르다.
탄산음료는 병 내부의 압력을 견디면서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입구를 안정적으로 밀봉하는 것이 중요하다.
19세기에는 탄산음료와 병입 제품의 유통이 확대되면서 여러 형태의 병마개가 고안됐다.
오늘날까지 이어진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왕관마개, 즉 크라운 코르크의 등장이다.
1892년 미국의 윌리엄 페인터가 특허를 받은 왕관마개는 금속 마개의 가장자리를 병 입구에 단단히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마개의 가장자리가 왕관처럼 주름진 모양을 하고 있어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
이 방식은 병 입구를 단단하게 밀봉할 수 있었고 대량으로 병입되는 음료에 활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단단히 고정되는 만큼 손가락만으로 쉽게 열기는 어려웠다.
새로운 마개가 새로운 문제를 만든 셈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관마개의 가장자리를 걸어 들어 올리는 전용 개봉 도구가 필요해졌다.
병따개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했다
일반적인 병따개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매우 단순하다.
마개의 가장자리 아래쪽에 걸리는 부분과 사람이 힘을 주는 손잡이가 있다.
병따개를 마개에 걸고 손잡이에 힘을 가하면 마개의 한쪽이 위로 들리면서 병 입구에서 분리된다.
여기에는 지렛대의 원리가 이용된다.
손가락으로 금속 마개 전체를 억지로 잡아당기는 대신 병따개의 특정 부분을 마개 아래에 걸고 긴 손잡이를 움직여 힘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힘으로도 단단히 고정된 마개를 비교적 쉽게 열 수 있다.
생활도구에서 지렛대 원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위나 집게처럼 사람이 가하는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만든 도구가 많다.
병따개 역시 복잡한 기계장치가 없어도 도구의 모양과 힘을 가하는 위치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흥미로운 점은 병따개가 병의 내용물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도구라는 것이다.
음료를 만들거나 맛을 바꾸지도 않는다.
오직 단단하게 닫힌 마개를 여는 짧은 순간에만 사용된다.
그럼에도 마개가 손으로 열기 어려운 구조가 되자 전용 도구가 필요해졌다.
손으로 돌리는 병뚜껑이 늘면서 병따개가 필요 없는 병도 생겼다
오늘날 모든 병에 병따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손으로 돌려 열 수 있는 나사식 마개가 있고 제품에 따라 손으로 개봉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금속 마개도 있다.
페트병의 뚜껑을 생각하면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뚜껑과 병 입구에 나사산이 있어 서로 맞물리기 때문에 뚜껑을 돌리면 열 수 있다. 다시 닫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전통적인 왕관마개는 병 입구에 눌러 고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병따개를 이용해 제거한다. 한번 변형되어 분리된 마개를 처음과 같은 상태로 다시 밀봉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병을 여는 방법은 병따개의 발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병을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어떤 음료를 담았는지, 마개를 어떻게 고정했는지가 함께 변해왔다.
생활도구의 역사는 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용기가 등장하면 그것을 닫는 방법이 필요하고, 더 단단한 마개가 만들어지면 다시 그것을 편리하게 여는 도구가 등장한다.
병따개는 바로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도구다.
과거에는 코르크처럼 뽑아내야 하는 마개가 사용됐고, 금속 왕관마개가 등장하면서 마개의 가장자리를 들어 올리는 전용 병따개가 필요해졌다. 이후에는 손으로 돌려 열 수 있는 마개가 널리 사용되면서 별도의 도구 없이 열 수 있는 병도 많아졌다.
평소에는 서랍 속에 놓여 있다가 몇 초 동안만 사용하는 작은 병따개에도 ‘어떻게 하면 내용물을 단단히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 쉽게 열 수 있을까’라는 오랜 생활의 문제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리고 병처럼 입구가 좁은 용기는 여는 것만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액체를 다른 병으로 옮겨 담을 때는 좁은 입구 때문에 밖으로 흘리기 쉬웠다. 다음에는 깔때기가 왜 넓은 입구와 좁은 출구를 가진 모양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용기를 열고 내용물을 옮기는 도구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FAQ
병따개가 없던 시대에는 병을 억지로 열었나요?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병따개가 널리 사용되기 전에는 병을 막는 방식 자체가 오늘날의 금속 왕관마개와 달랐다. 코르크처럼 병목 안에 넣는 마개는 뽑아서 열었고, 시대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마개가 사용됐다.
금속으로 된 왕관 모양 병마개는 언제 등장했나요?
왕관마개로 알려진 크라운 코르크는 미국의 윌리엄 페인터가 1892년에 특허를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금속 가장자리를 병 입구에 고정해 밀봉하는 구조로, 이후 병에 담긴 음료에 널리 활용됐다.
코르크스크루와 병따개는 무엇이 다른가요?
두 도구 모두 병을 열기 위해 사용하지만 대상이 되는 마개의 구조가 다르다. 코르크스크루는 병목 안쪽에 들어간 코르크에 나선형 부분을 넣어 마개를 뽑아내는 데 사용한다. 일반적인 병따개는 금속 왕관마개의 가장자리에 걸어 지렛대 원리로 마개를 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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