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은 언제부터 평범한 집에도 들어오기 시작했을까?

 



오늘날 집을 지으면서 창문에 유리를 넣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거실에는 커다란 유리창을 설치하고, 방이나 주방에도 유리로 된 창문을 만든다. 창을 닫은 상태에서도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정이 달랐다.

유리 자체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유리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평범한 집의 창문을 넓은 유리판으로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크고 평평한 유리판을 일정한 품질로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작에 많은 비용과 기술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유리창을 누구나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유리창은 어떤 과정을 거쳐 특별한 건물의 재료에서 평범한 주택의 익숙한 시설로 바뀌었을까?

유리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창문용 판유리는 귀했다

유리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유리 제품이 만들어졌고, 로마 시대에는 유리 제작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

로마 시대의 일부 건축물에서는 창에 유리를 사용한 사례도 확인된다.

하지만 당시의 창유리를 오늘날의 판유리와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현대의 창유리는 넓고 평평하며 두께가 비교적 일정하다. 표면도 고르게 만들어져 바깥 풍경을 비교적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유리판을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유리를 녹이는 데 높은 온도가 필요했고, 녹인 유리를 얇고 평평한 판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만들 수 있는 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유리가 존재한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집의 모든 창에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리창은 오랫동안 비용이 많이 드는 건축 요소였다.

작은 유리 조각을 여러 개 연결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오래된 서양 건축물의 창문을 보면 하나의 커다란 유리판 대신 작은 유리 조각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장식만을 위한 구조는 아니었다.

커다란 판유리를 만드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비교적 작은 유리 조각을 만든 뒤 창틀에 여러 개를 연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창을 여러 칸으로 나누는 살은 작은 유리 조각을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

교회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여러 색의 유리 조각을 연결해 큰 창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종교적 표현과 장식이라는 중요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유리 조각을 이어 넓은 면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당시 유리 제작 환경의 특징도 함께 보여준다.

일반적인 주택에서도 작은 판유리를 여러 칸으로 나누어 설치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지금 우리가 오래된 건물에서 보는 격자형 창문에는 당시 만들 수 있었던 유리의 크기와 제작 기술이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유리창은 처음부터 모든 계층의 집에 보급된 것이 아니었다

유리창이 건축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가정에 퍼진 것은 아니다.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 유리창은 건물의 성격과 소유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보급 정도가 크게 달랐다.

교회나 궁전, 부유한 사람의 저택과 같은 건물에서는 유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평범한 주택에서는 유리가 없는 창도 오랫동안 존재했다.

지역에 따라 나무 덧문이나 다른 재료를 이용해 창을 가리는 방법도 계속 사용됐다.

유리창이 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근세 유럽에서는 건물을 떠나거나 이사할 때 창유리를 귀중한 재산처럼 취급한 사례가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오늘날에는 창유리가 건물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다시 사용할 가치가 있는 비싼 재료였던 것이다.

따라서 ‘유리창은 몇 년부터 일반 가정에서 사용됐다’고 하나의 연도로 정하기는 어렵다.

국가와 지역, 도시와 농촌, 경제적 수준에 따라 보급 속도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생산 기술의 발전이 유리창을 바꾸었다

유리창이 더 많은 집으로 확산되려면 결국 가격과 생산량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여기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유리 제조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였다.

유리를 더 많은 양으로 생산하고 판유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건축용 유리를 사용하는 범위도 점차 넓어졌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리 생산의 기계화가 진전되고 판유리를 만드는 기술도 계속 개선됐다.

철도와 도시의 성장, 공장 생산의 확대도 건축 재료를 더 넓은 지역으로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주택 역시 변화했다.

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많은 주택과 건물이 새로 지어졌고, 실내의 채광과 환기는 중요한 건축 요소가 됐다.

유리창의 보급은 단순히 사람들이 바깥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건축과 도시생활의 변화, 유리 생산 기술, 운송과 대량생산이 함께 움직인 결과였다.

서구 여러 지역에서는 19세기를 거치며 주택의 유리창이 이전보다 훨씬 흔해졌지만, 실제 보급 시기는 지역과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20세기에는 커다란 창을 만드는 조건도 갖춰졌다

유리창의 대중화에서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더 크고 품질이 일정한 판유리를 생산하는 기술의 발전이었다.

오늘날 건축물에 사용되는 넓고 평평한 유리를 보면 과거 사람들이 왜 작은 유리 조각을 여러 개 연결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대 판유리 생산에 특히 큰 영향을 준 기술이 플로트 공법이다.

20세기 중반 영국의 필킹턴사가 발전시킨 이 방식은 녹인 유리를 용융된 주석 위에 띄워 평평하고 균일한 유리판을 연속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확산되면서 품질이 일정한 판유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창문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처럼 작은 유리를 수많은 칸으로 나누지 않고 넓은 면을 하나의 유리판으로 구성하기 쉬워졌다.

주택의 거실에 넓은 창을 만들고 상점의 전면을 커다란 유리로 구성하거나 현대 건축물의 외벽에 대형 유리를 사용하는 모습도 이러한 판유리 생산 기술과 관련이 있다.

유리를 만드는 방법의 변화가 건물의 모습까지 바꾼 것이다.

한국의 주택에서도 유리창은 점차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주거에서는 오랫동안 종이를 바른 창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호지는 외부의 시선을 가리면서 자연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재료였다.

따라서 유리가 없었다고 해서 창문의 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대에 들어 서양식 건축과 새로운 건축 재료가 유입되면서 유리를 사용한 창도 점차 늘어났다.

다만 한국에서도 유리창이 모든 평범한 집에 한꺼번에 보급된 것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의 주거환경이 달랐고 전통가옥과 근대식·서양식 건물이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거치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현대식 주택과 아파트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유리창은 일상적인 주거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후에는 단순히 유리 한 장을 끼우는 것을 넘어 두 장 이상의 유리를 이용한 복층유리와 단열성능을 높인 창호 등이 일반 주택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창문에 요구되는 역할이 다시 늘어난 것이다.

빛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보여주면서 비와 바람을 막고, 실내의 냉난방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도 줄여야 했다.

유리창의 대중화는 집 안의 낮 풍경을 바꾸었다

유리창이 평범한 주택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변화는 단순히 창문의 재료 하나가 바뀐 사건이 아니다.

유리창의 중요한 특징은 창을 닫은 상태에서도 자연광과 바깥 풍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덧문을 닫으면 실내가 어두워지고, 열린 창으로 빛을 받으면 바람과 날씨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야 했던 문제를 투명한 유리가 상당 부분 해결했다.

그 결과 창문의 크기와 역할도 점차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에는 외부 환경을 막기 위해 개구부의 크기를 제한해야 했다면 유리와 창틀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더 넓은 창을 만드는 선택지가 생겼다.

물론 큰 유리창에는 단열과 안전, 구조적인 문제처럼 새로운 과제도 따라왔다.

생활도구의 역사는 늘 이런 식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기능이 더 많아진다.

유리창 역시 처음에는 귀하고 작은 건축 재료였지만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더 많은 건물과 주택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유리창은 언제부터 평범한 집에 들어왔을까?’라는 질문에는 하나의 연도보다 흐름으로 답하는 편이 정확하다.

유리는 고대부터 존재했고 창에도 사용됐지만 오랫동안 비싸고 제한적인 재료였다. 유럽에서는 근세를 지나며 사용 범위가 넓어졌고, 특히 19세기의 산업화와 판유리 생산 기술 발전을 거치면서 일반 주택에서도 훨씬 흔해졌다. 20세기에는 대량생산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오늘날처럼 넓고 품질이 일정한 유리창을 사용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리가 흔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창을 유리로 막을 수 있는가’에서 ‘이 창을 어떻게 편리하게 열고 닫을 것인가’로 옮겨갔다.

다음에는 창문이 왜 문처럼 한 방향으로만 열리지 않고 미닫이, 여닫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방식 등 여러 구조로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면 유리라는 재료에서 창문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FAQ

유리창은 고대에도 있었나요?

유리 자체는 고대부터 만들어졌으며 로마 시대의 일부 건축물에서도 창에 유리를 사용한 사례가 확인된다. 다만 당시의 창유리는 오늘날처럼 크고 평평하며 저렴한 판유리가 아니었고, 일반적인 모든 주택에서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재료도 아니었다.

평범한 집에 유리창이 널리 보급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하나의 연도로 정하기는 어렵다. 국가와 지역, 경제적 수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근세 이후 사용 범위가 점차 확대됐고, 특히 19세기 산업화와 유리 생산 기술의 발전을 거치면서 일반 주택에서도 유리창이 훨씬 흔해졌다.

옛날 유리창은 왜 작은 칸으로 많이 나뉘어 있었나요?

과거에는 크고 평평한 판유리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비교적 작은 유리 조각을 여러 개 만든 뒤 창틀이나 살을 이용해 연결하는 방식이 현실적이었다. 판유리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더 크고 넓은 유리창을 만들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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